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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세계에서

 

혚학

 

W. HOOD

 

 

 

하늘이 무너졌다. 말 그대로 하늘이 조각나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어 버리고 태양과 달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늘이 깨워주어야 일어나는 그들은 하늘이 무너지자, 바다 밑 깊은 곳에서 영원히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하늘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떨어졌다. 그중에서 제일 큰 조각은 떨어지자마자 사람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고 인간들 사이에 숨어들었다. 자신의 작은 나머지 조각들을 찾아 끼워 맞추고 다시 높이 올라가야 했다. 하늘이 없으면 바깥에서 스며드는 어둠으로부터 사랑하는 인간들을 지켜줄 수 없었다. 지금처럼 조각난 형태로는 어둠을 막을 수 없었다. 인간들의 세상을 감싸 안는다고 해도 틈으로 새어 들어와 인간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하늘은 조각나기 전에 마지막 발악으로 태양과 달의 힘을 빌려 세상의 색을 숨겼다. 그것이 잠시나마 인간들을 지켜줄 방패가 되었다. 색이 없는 세계, 큰 조각은 세상에 색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작은 조각들을 찾아야 했다.

 

 

 

 

 

 

 

 

 

 

세상에 종말이 찾아왔다.

 

 

어둠은 눈을 뜨고 살아있는 것을, 색을 기억하는 것들을 집어삼키며 추락한 하늘을 찾아다니니. 그것이 인간들에게는 이 세상의 끝, 종말이었다.

 

 

 

 

 

 

 

 

 

 

 

 

 

 

 

 

재현은 꿈을 꿨다.

 

매일 듣던 목소리가 곁에 내려오는 꿈을. 낮고, 부드럽고, 심장을 간지럽히듯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 들으면서도 늘 적응되지 않은 부드러움은 재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사라졌다. 눈을 뜨고 보니 방이었다. 재현은 멍하니 이마를 문질렀다. 꿈에서 입술 도장 찍힌 이마가 뜨끈했다. 아직 밤이라 이것이 무슨 꿈인지 하늘에게 물을 수 없었다. 내일 해가 뜨면, 물어야지. 하늘과 약속한 몇 가지 중 하나였다. 해가 뜬 후, 지기 전에만 질문할 것. 재현은 조용한 곳에서 혼자 존재감을 알리는 큰 심장 박동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재현이 잠든 침대 옆으로 하늘이, 큰 조각이 내려왔다. 커다란 유리창을 미끄러지듯 통과하여 재현의 곁에 선 큰 조각은 어두운 남색 빛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사랑하는 세계가 빛을 잃어가고 있다. 달이 잠들면 색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하늘은 재현에게 심어져 있던 자신의 작은 파편을 거두고는 꿈에서처럼 이마에 입을 맞추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큰 조각은 재현의 앞 머리카락을 살랑이고 모습을 감추었다.

 

 

 

 

 

 

 

 

 

재현은 하늘에게 그것이 무슨 꿈이었냐고 물을 수 없었다. 이미 해가 뜨고도 남았어야 하는 시간인데. 유리창 밖의 세상은 색을 잃었고, 태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신전 안도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색이 없는 세계. 재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하늘을 불렀지만 그게 전부였다. 불러도 답이 없는 공허. 하늘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런 적은 없었다. 재현은 뜬 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울먹이며 다급히 방을 나섰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북쪽 신전이 들썩였다.

 

신전의 사람들이 다급하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늘이 천자를 임명하고, 인간과 소통하기 시작한 오랜 옛날부터 역사를 기록해 온 신전의 도서관. 서적이 마구잡이로 쌓인 중심에 천자, 재현이 있었다. 재현은 사람들과 뒤섞여 책을 뒤졌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하늘에게 큰일이 생겼음을 재현은 직감했다. 재현은 세월만큼 쌓여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를 털어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마시면서 책장을 넘겼다. 태양과 달, 하늘에 대한 이야기란 이야기는 닥치는 대로 읽으며 지금 상황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태초에 외롭지만 찬란한 하늘이 태어나니, 그것이 이 세계의 시작이었다.

 

 

 

 

이건 하늘이 몇백 번이고 말해줬던 쓸쓸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외로움을 많이 타던 그 목소리가, 재현은 간절했다. 제발, 내 말 듣고 있으면 답 좀 해봐요.

 

 

 

 

하늘은 한쪽 손으로는 태양을, 다른 한쪽 손으로는 달을 만들었다.

 

 

 

 

하늘이 맨날 깨워주러 가야 한다는, 잠 많은 둘에 관한 이야기. 하늘은 심심하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늘이 창조하였으니 부모와 자식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이런 건 됐고. 그 둘의 부재나 색이 없는 세상, 하늘의 묵묵부답에 관한 이야기는 없는 건가. 평소에는 궁금한 게 있으면 하늘에게 물어보면 되는 삶을 살았던 터라, 재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직접 무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에 서툰 재현은 막막함에 열심히 넘기던 책장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하늘과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건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재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안 돼, 아닐 거야. 참으려 애써도 볼을 타고 흐르는 굵은 눈물을 재현은 멈출 수 없었다.

 

 

 

 

그래, 그건 아니야.

 

 

 

 

재현은 순간 뒤를 돌아봤다. 분명 뒤에서 들렸다. 하늘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방향이 짐작 가는 건 처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허공에서 속삭였으므로.

 

 

 

 

하늘?

 

맞아, 나야. 나 여기 있어. 울지 마, 응?

 

 

 

 

하늘, 큰 조각은 재현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이 일렁이며 잠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보이지 않던 손이 색을 찾았고, 색이 없어 결국 회색빛으로 물든 큰 조각은 앉아있는 재현을 내려다봤다. 색을 찾던 손이 눈물로 엉망인 재현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세계의 주인, 이었던 자. 재현은 하늘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가져간다. 자연스레 이 세계의 모든 것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

 

 

 

 

재현아, 세계에 종말이 찾아왔어.

 

 

 

 

큰 조각은 그렇게 말하곤 마치 즐거운 일이라는 듯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웃는 하늘, 재현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하늘에게 이끌렸다.

 

 

 

 

 

 

 

 

 

 

 

 

 

신전은 다시 한번 들썩였다. 하늘의 강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과 그가 꺼낸 이야기 때문에. 긴급한 회의가 열리고, 신전 안의 모든 중요 인물들이 모여 하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기다란 탁자를 주위로 다들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회의실의 커다란 창밖의 풍경과 다를 것 없는 회색의 신전. 세계의 아름다움을 잠시 접어둔 것도 하늘이었다.

 

 

 

 

아니야. 내가 하늘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아. 지금 난 완전하지 않거든.

 

 

 

 

하늘, 큰 조각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훌쩍 창틀로 올라섰다. 발 디딜 틈도 없는 좁은 곳에 큰 조각은 발끝으로도 편안히 서서 큰 창문을 열었다. 입고 있던 윗옷이 이는 바람에 흔들렸다. 색과 태양이 존재했다면 눈부셨을 광경이다. 큰 조각은 뒤를 돌아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인간들을 눈에 담았다. 그중에서도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 쓰여 있는, 재현이. 사랑하는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내 사람, 내 사랑. 하하, 큰 조각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에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킥킥 웃던 큰 조각은 부드럽게 창틀에서 내려왔다. 인간의 몸짓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무게가 없는 듯한 움직임은 걸을 때도 계속되었다. 큰 조각의 걸음걸이는 공중을 걷는 것과도 같아서 짧은 순간을 넘어 재현의 앞에 다다랐다.

 

 

 

 

봐, 재현아. 나는 깨어지고 무너져서 곤두박질친 거야.

 

 

 

 

재현에게만 보이는 하늘의 부서진 파편들이 큰 조각의 주위를 떠다녔다. 색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찬란한 파편들. 그들은 잘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로 맞춰지고 나서야 큰 조각에게 돌아갔다. 웅성거리며 재현에게 말을 거는 것도 같았으나, 큰 조각과 합쳐지고 난 뒤에는 조용해졌다. 재현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큰 조각을 응시했다.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네.

 

 

 

 

큰 조각은 벙 찐 인간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줘야 하나 고민했다. 결국은 하지 않았다. 재현에게만 슬쩍 귀띔해 주었을 뿐. 하늘이었을 적과 같았다. 천자에게만 답을 해줘, 나는. 천자만이 너희들에게 답을 줄 수 있지. 재미있지 않아?

 

 

재현은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믿을 수 없이 웅장한 장면들을 정리하면서 신전의 사람들에게 착실하게 큰 조각의 뜻을 전했다. 우리를 보호하던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곧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거예요. 신전의 문을 걸어 잠그고, 하늘과 가장 먼 곳으로 가야 해요. 부디 무탈하길.

 

 

 

 

재현은 모두가 빠져나간 북쪽 신전의 문 앞에 서서 텅 빈 안쪽을 바라봤다. 신전에서 나가게 될 줄이야. 간단히 챙긴 짐을 어깨에 메고, 재현은 신전의 문을 굳게 닫았다. 커다란 문은 무거운 소리로 단절을 떠올리게 했다. 당분간 열릴 일은 없겠지. 진지한 표정인 재현의 곁에서 뒷짐을 지고 발로 장난을 하던 큰 조각이 재현의 손 사이로 자신의 손을 살살 밀어 넣어 붙잡았다.

 

 

 

 

재현아, 빨리 날 찾으러 가자. 그래야 널 지켜줄 수 있어.

 

 

 

 

재현은 조심스레 깍지껴오는 따뜻하고 큰 손을 내려다봤다. 태평하고,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조금의 긴장감도 없는 평화로움. 빛없는 무색의 세계인 것만 아니면 어둠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큰 조각의 말과는 다르게 세상은 너무도 고요했다. 큰 조각의 전혀 아무렇지 않은 태도에도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었으니까. 재현은 손을 보고 있던 시선을 올려 큰 조각의 얼굴을 쳐다봤다. 눈을 마주치자 큰 조각의 얼굴에 번지는 행복이 너무 선명해서, 재현은 그냥 앞에 있는 이 하늘을 믿어보기로 했다.

 

 

 

 

폭풍전야는 조용하다, 맞죠?

 

응.

 

 

 

 

고개를 주억인 큰 조각은 재현과 깍지 낀 손을 흔들며 나들이 가듯 가볍게 걸음을 뗐다. 고작 둘이서 종말을 막을 수 있을까, 진짜 종말이 맞긴 한가라는 잡생각은 이제 그만 집어넣고. 재현은 큰 조각이 이끄는 대로 발을 디뎠다.

 

 

 

 

 

 

 

 

 

 

 

 

 

 

 

 

새카만 어둠은 아주 오랜 시간의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웅크렸던 몸을 사방으로 펼쳤다. 잠들기 전부터 줄곧 가지고 싶었던 세계를, 힘을 비축한 지금 당장 손에 넣기 위해. 세계를 껴안고 보호하던 하늘을 무너뜨렸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도 쉽게 깨어져 추락하는 하늘의 작디작은 몇 개의 조각은 그대로 어둠의 커다란 입안에 삼켜졌다. 그 조각을 통해 아름다운 세계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나, 엿보려 했건만. 어떻게 된 일인지 곧 무용지물이 됐다. 어둠은 급히 세계의 흔적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예전의 길도 이미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늘 네 이놈. 세계에 빛과 색만 있는 것은 아니지. 어둠은 깊은 심연에서 손을 뻗었다. 세계에 닿는다. 하늘이 있을 때, 세계에 존재는 하나 닿을 수조차 없었던 곳을 이리도 쉽게, 이토록 쉬웠던 것을 이제야. 하늘을 완전히 집어삼켜야 아름다운 세계가 나의 것이 된다. 어둠은 참을 수 없이 격양된 감정을 세계를 향해 쏘았다.

 

 

쿵. 무게 실린 공격에 세계의 곳곳의 어둠이 크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꿀렁이며 솟아난 어둠의 분신들이 세계를 어둠에게 보였다. 무색, 빛의 찬란함을 잃은 세계. 이런 세계는 나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어둠은 분노로 물든 온몸을 모아 똬리를 틀었다. 여태껏 집어 삼켜온 수많은 세계도 어둠 안에서 하나같이 무색으로 변했다. 그래서 탐낸 것이다. 자신은 가지지 못한 찬란함을 하늘이 가지고 있어서. 어둠은 번뜩이는 눈으로 천천히 세계를 둘러보며 하늘을 찾았다. 빛을 앗아가다니, 아주 못된 자로군. 거대한 몸으로 그에 비해 작은 세계에 꽁꽁 숨어버린 하늘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 어둠은 생명체의 형태를 한 껍데기에 몸을 구겨 넣고, 세계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덩어리 채로 흘러내린 어둠들이 야금야금 세계를 갉아먹었다. 어둠은 자신을 닮은 꾸물거리는 덩어리들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짓밟아 버리고 하늘을 찾아 땅으로 스며들었다.

 

 

밟힌 곳을 중심으로 몸을 뒤틀며 꿈틀대던 작은 어둠들은 곧 원래대로 돌아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색을 기억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삼키기 시작했다. 인간은 물론이요, 동물, 사물 가리는 것 없이 달려들다가, 어둠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빛과 색에 대해 말하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작은 어둠들은 뚜렷한 형체 없는 몸을 움직이며 인간을 찾아 온 세계로 퍼졌다. 어떤 어둠은 색 없는 파란 바다를 건너가고, 어떤 어둠은 무색의 허공을 날았다.

 

마침내 종말다운 모습들이 조금씩 세계를 잠식시키고 있었다.

 

 

 

 

 

 

 

 

 

 

 

 

 

 

 

 

 

 

큰 조각은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종말을 선언할 때도, 신전의 문을 닫을 때도, 조각난 자신을 찾아 끼워 맞출 때도. 재현은 궁금했다. 아직도 너무 고요한 세계와 당신의 여유로움과 행복에 대해. 신전을 나설 때는 약간의 불신과 함께였고, 지금은 물음뿐이었다. 덜컹이며 흔들리는 지프차 조수석에서 재현은 물었다. 왜 그렇게 여유로워요?

 

 

 

 

아닌데, 여유롭지 않아.

 

그런데 왜 맨날 웃고 있어요?

 

어... 그러게.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어서?

 

 

 

 

큰 조각이 이럴 때마다 재현은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 마음과 미친 듯이 두근대기 시작하는 심장 때문에 울고 싶었다. 목소리만 들렸을 때부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을 진심이 잔뜩 묻은 고백에 재현은 꾹 다물려진 입과 함께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숙이고는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니까... 내가 왜 좋냐구... 자꾸 그러면... 부끄럽잖아요...

 

 

 

 

큰 조각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내게는 특별하거든. 말 그대로 재현은 큰 조각에게 특별했다. 하늘이 사랑해서 모습은 바뀌어도 계속 환생하는 같은 영혼의 인간. 천자라는 이름을 통해 하늘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사랑에 빠지고, 개입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을 슬퍼하고. 반복해가며 긴 세월을 지나왔다. 하늘은 그걸 재현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좋은 답일 때가 있다.

 

 

 

 

 

 

큰 조각과 재현이 거쳐 가는 다양한 풍경의 거리마다 큰 조각은 한 번씩 차에서 내려 조각난 자신의 파편들을 거두고 끼워 맞췄다. 생각보다 빨리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파편들이 멀리 흩어지지 않고 몇 군데에 나뉘어 떨어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맞춰질 때마다 큰 조각의 흐릿했던 분위기가 점점 뚜렷해졌다. 큰 조각의 뒤로 거의 맞춰져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한 거대한 하늘이 재현에게 어렴풋이 보였다. 색이 점점 돌아오고 있다. 어둠이 그들을 찾기 전에, 세상에는 없는 그 어떠한 색도 아닌 것으로 물든 큰 조각은 색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빛났다. 빛에 민감한 어둠으로부터 이제는 더 이상 숨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큰 조각은 재현에게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야기했다.

 

 

이제 마지막, 어둠이 삼킨 아주 작은 몇 개의 조각만 남았다.

 

 

 

 

 

어둠은 세력을 넓혀 재현과 큰 조각의 뒤를 쫓았다. 빛나기 시작한 큰 조각은 기척을 숨기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정면 돌파. 작은 어둠들이 먼저 발견해 그들의 지프차 뒷바퀴를 삼키고 달라붙어 결국 끈적이는 검은 수렁으로 빠졌다. 급히 차 문을 열고 탈출한 큰 조각과 재현은 거침없이 몸을 날리는 작은 어둠을 피해 전력을 다해 뛰었다. 재현을 향해 달려드는 어둠을 하늘이 손짓으로 막았다. 닿지 못한 어둠이 허우적대다가 바닥에 떨어져 철퍽이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이내 몸을 뒤틀고 일어나 무서운 속도로 큰 조각과 재현을 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쏘아져 오는 어둠을 피해 아무도 없는 동쪽 신전의 안쪽으로 더, 깊숙이 더, 더. 큰 조각은 걸음을 멈췄다. 멈춰진 걸음에 재현이 큰 조각에게 이마를 꿍 부딪혔다.

 

 

 

스산한 기운과 함께 작은 어둠들이 재현과 큰 조각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앞다투어 어둠에게로 향하다가 서로를 삼키고, 점점 커진 어둠은 이내 검은 액체를 뚝뚝 흘리며 어둠의 앞에 섰다. 어둠은 미간을 구기고 작은 어둠들이 모여서 된 거대한 덩어리를 두 동강 내버렸다. 아무런 비명도 없이 잘려진 어둠이었던 것은 주르륵 흘러내려 어둠의 그림자 속으로 흡수되었다. 독기가 잔뜩 오른 눈을 하고 꼿꼿이 서 있는 어둠은 오랜만에 보는 벗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그 옆에 눈을 동그랗게 키우고 놀란 표정을 한 인간을 한 번 바라봤다.

 

 

 

 

아직도 사랑 타령이구나, 너는.

 

 

 

 

그 뒤는 재현의 눈으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날카로운 것이 서로 맞부딪히는 소리, 무언가 찢기는 소리, 그런 소리만으로도 귀가 터질 것같이 울리며 어둠과 큰 조각의 싸움을 알렸다. 눈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빠르고, 두려운. 인간인 재현에게는 끼어들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재현은 저 자신도 모르게 떨기 시작했다.

 

 

계속되던 싸움은 큰 조각이 어둠의 목을 긴 창으로 꿰어 바닥에 꽂는 것으로 끝이 났다. 피가 아닌 검은 액체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창을 집어삼키려고 했지만, 큰 조각의 창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 행동을 헤집어 어둠이 삼켰던 마지막 조각들을 찾아냈다. 마침내.

 

 

 

완전한 하늘은 세계에 빛을 돌려놓았다. 다시 찾은 세상의 아름다움은 찬란했다. 하늘은 죽어가는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오랜 벗의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지켜보게 될 줄이야. 하늘은 점점 녹아들어 가는 검은 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입만 남아서. 어둠은 하늘을 저주했다. 마지막이니 색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같잖은 배려는 집어치워. 평생의 절반을 함께한 벗을 죽인 것이 영원을 사는 너에게 어떤 고통이 될지 생각하니 꼴좋군. 하늘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슬프고 비참한 표정을 하고 어둠의 저주를 끝의 끝까지 다 들어주었다. 실컷 악의가 넘치는 말을 무책임하게 뱉던 주인 없는 검은 입이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고, 하늘은 뒤를 돌아 재현에게 가서 안겼다. 재현은 말없이 하늘을 토닥여주었다.

 

 

 

 

 

 

 

내 죽음이 네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검은 어둠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하늘의 몸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그런 줄 알았다. 하늘이 꿰뚫리기 전, 먼저 뛰어든 것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검붉은 혈이 하늘에게 튀었다. 마지막까지 안심해서는 안 됐었는데, 그래야 했는데. 인간에게만 주어진, 운명을 바꾸는 힘. 하늘은 아주 미약한 힘만으로도 기력을 다한 어둠을 소멸시킬 수 있었다. 하늘은 비틀거리며 재현에게 다가갔다. 힘없이 늘어져 겨우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재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장대비가 쏟아졌다.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재현을 보며 하늘은 물었다.

 

 

 

 

재현아, 아프지 않게 해줄게.

 

 

 

재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널 살릴 수 없어.

 

 

 

 

재현은 다 안다는 듯 웃었다. 사람을 살려달라는 물음에 수도 없이 답했던 그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수명이 다해 죽지 않았으니 언제 환생할지 하늘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재현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승협, 아마도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

 

 

 

 

 

 

 

하늘이 사랑한 인간은 늘 그랬듯 사랑을 남기고 그를 떠났다.

 

이른 장마가 세계를 뒤덮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하늘의 눈에서도 같은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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