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알람도 울리기 전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사람들의 발을 꽁꽁 묶어 놓았다. 승협도 마찬가지였다. 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지면으로 살벌히 내리꽂히는 빗살 때문에 우산을 펼칠 수도 없었다. 사방으로 총알이 튀듯 튀어나가는 빗방울들이 자동차 덮개와 앞 유리를 퉁퉁 무섭게 두드려 댔다.
“아, 네. 도착했는데요…….”
전화를 받은 승협이 가랑이 사이로 꼬리를 말아 넣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목소리는 그 와중에도 승협을 무섭게 몰아붙였다. 승협의 표정이 점점 울상에서 죽을상으로 바뀌어 갔다. 승협은 마지막 반항으로 창문을 열었다. 폭포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안방에서 태평하게 전화를 받던 사수의 태도가 조금이지만 누그러졌다.
“저는 그럼 정말 기다리기만 할 겁니다. 네? 선배? 여보세요?”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붙잡고 한참을 선배를 찾던 승협이 한숨을 쉬었다. 우산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룸미러에 비치는 얼굴이 파랬다.
차 문을 열자 창문만 내렸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한기가 느껴졌다. 승협은 침을 삼키고 오늘의 격전지로 걸음을 옮겼다. 낡은 빌라였다. 지어진 지 이십 년이 다 되어 갔지만 부동산의 거품은 걷힐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귀신이 살아도 살 것 같은 곳에는 산 사람도 살았다. 화단에는 죽은 선인장이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어디 보자. 삼백삼 호. 삼 층……이 아니고 사 층이구나.”
옛날에 지어진 건물들이 으레 그렇듯이 승협의 고객이 사는 삼 층도 사실은 사 층이었다. 주차장에서 빌라까지는 열 발짝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승협은 젖은 구두를 벗어야 했다. 구두 속 고인 물이 찰랑거렸다.
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니었는데도 승협이 층을 오를 때마다 센서등이 켜졌다. 승협의 그림자가 멀어지면 꺼지고. 그렇게 네 번을 반복했을 때.
“삼백삼 호 아저씨. 안 계십니까? 저, 동, 동사무소에서 왔는데요.”
거짓말이었다. 승협은 최대한 사무적이고 적대적이지 않은 목소리를 꾸미려고 애썼다. 승협은 사채업자였다. 정확하게는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승협의 대학교 선배이자 사수이며 동시에 그 본인인 사채업자는 키 크지, 몸 좋지, 목소리도 낮고, 착해 빠진 성격이야 어쨌든 정색하면 무서워 보이는 승협을 빨리 실전에 쓰고 싶어 했다. 늦잠을 잔 오늘이 그날로는 제격이었고.
초인종이 고장났기 때문에 승협은 철문을 직접 손으로 두드려야 했다. 안쪽은 조용했다. 똑똑거리던 노크가 쿵쿵에서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쾅쾅이 되었을 즈음 문이 열렸다. 삼백삼 호 말고 아래층에서. 슬리퍼를 끌고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세요?”
가장 먼저 승협의 눈에 띈 것은 화려하게 탈색한 금발 머리였다. 자고 일어난 게 분명해 보이는데도 뽀얗고 앳된 뺨과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승협은 일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번호부터 물어볼 뻔했다. 승협은 움켜쥐었던 주먹부터 등 뒤로 숨겼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잠옷 차림이었다.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더니 어린이 애니메이션 잠옷이었다. 저도 모르게 웃을 뻔한 승협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적당한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쭈뼛거리는 승협을 계단참에서 올려다보던 남자가 아, 하고 손뼉을 쳤다. 헐렁한 잠옷 소매가 내려가며 얼굴처럼 흰 팔뚝을 드러냈다. 단단해 보였다. 무심코 말랑말랑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한 승협이 계단을 올라와 다가오는 남자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히죽 웃은 남자가 승협을, 그 뒤의 삼백삼 호 문을 가리키며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집 찾아 오셨어요?
“그 아저씨 달아난 지 꽤 됐는데.”
“아.”
“진짜 동사무소에서 오셨어요? 형.”
언제 봤다고 형이라고 부르는 건지. 계단 밑에서도 작아 보였지만 이렇게 보니 진짜 작았다. 아니, 진짜까지는 아니고. 아까부터 자꾸만 눈앞의 남자에게 실례되는 생각만 하는 자신을 나무란 승협이 뜸을 들이다 고개를 저었다.
웃음이 헤픈 성격인지 남자는 승협이 고개만 저어도 좋다고 깔깔 웃었다.
“어쩐지. 삼백삼 호 아저씨가 달아난 이유가 형 때문이구나.”
“제가, 제가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요.”
“저한테 왜 변명하시는데요?”
“…….”
민망함을 이기지 못한 승협이 눈을 떨어뜨렸다. 남자는 또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눈곱을 매단 눈이 크게 휘어지는데. 승협은 인정해야 했다.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농담인데요.”
“아니, 저기요.”
“말 놓으셔도 돼요, 형.”
자꾸 형, 형. 정신을 차린 승협은 남자의 손에 잡혀 이백일 호로 끌려 들어갔다. 낡은 건물이어도 보일러는 잘 돌아가는지 공기의 질부터가 바깥과 달랐다. 남자는 승협을 제 방으로 데려왔다. 비슷하게 생긴 잠옷 여러 벌이 벽에 양면 테이프로 고정한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그 옆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롱패딩이, 그 아래에는 나이키 신발 상자가 두 개.
“제 이름은 회승이에요, 형. 유회승. 형은요?”
“내, 내 이름?”
“네. 형 이름이요.”
승협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그런 승협의 어깨를 살짝 밀어 제 침대 위로 넘어뜨린 회승이 오히려 되물었다. 왜냐뇨.
“섹스하는 사이에 이름 모르면 서운하지 않나요?”
“뭐?”
뭘 한다고? 우리가? 어느새 승협의 배 위로 올라탄 회승이 승협의 팔목으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의외였던 팔뚝만큼이나 단단한 손바닥이 승협의 팔목을 고정했다. 슥슥 끄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거친 밧줄이 승협의 팔목을 묶고 있었다. 당황한 승협이 눈을 내려 회승을 쳐다보았다.
“죄송. 이따 풀어 드릴게요.”
“아니, 저기, 회승아!”
“와. 형 목소리 진짜 좋아요. 더 불러 봐요. 제 이름.”
그리고 팔은 그렇게 비틀지 않으시는 게 좋을걸요. 히히 웃은 회승이 말했다. 애들이 그러는데. 침대 밖으로 허리를 구부린 회승이 승협의 가방을 주워 올렸다. 문방구에서 흔하게 보는 천 원짜리 가죽 표지의 수첩과 지갑이 들려 나왔다.
“거기 쓸린 상처가 한 달은 갔대요. 많이 아프다나 봐요.”
“너, 너, 이 미친 새끼…….”
“형은 욕을 해도 섹시하네요. 봐줬다. 다른 애들은 입도 막아 버렸는데. 형은 그 목소리 덕에 숨은 쉬는 줄 아세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낸 회승이 킥킥거렸다. 어떡해.
“형, 사진 언제 찍으신 거예요? 진짜 귀엽다. 형은 하나 더 만들어요. 이건 제가 가질래요.”
“야아, 회승아.”
“응. 듣기 좋아. 저보다 세 살 많으시네요. 지금 하고 계신 일은 할 만해요?”
승협이 형. 승협의 이름을 확인한 회승이 지갑을 닫고, 신분증은 쏙 빼서 제 손에 쥔 채 승협 위로 포개졌다. 동그란 뺨이 가슴에 문질러졌다. 부드러웠다.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 뻔한 승협이 머리를 흔들었다.
“겁먹으셨구나.”
“아니, 진짜……. 이게, 대체.”
“어차피 형도 할 일 없으셨잖아요. 저랑 떡 치고, 이야기 좀 하다가, 밥도 먹고 가요. 제가 찌개를 또 그렇게 기가 막히게 잘 끓이거든요.”
네? 형. 속삭인 회승은 먼저 입술부터 비벼 왔다. 셔츠 속으로 파고드는 손이 따뜻했다. 회승은 쉬지 않고 혀를 움직여 애교스러운 말들로 승협을 달랬다. 통통한 입술이 귓바퀴를 사탕 빠는 어린아이처럼 쪽쪽 빨았다. 승협은 그동안 합리화를 마쳤다. 회승은 자신을 부르는 자신 없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진짜, 이따 풀어 줄 거지?”
“그렇다니까요. 제가 묶고 하는 걸 좋아해서.”
“취향 정말 이상하다.”
“그런 이야기 종종 들어요. 그럼요, 형. 다리 벌려 봐요.”
승협은 마지못해 다리를 벌렸다. 사실은 조금 기대했다. 승협의 뺨이 축축해지도록 입을 맞추고 이를 깨물던 회승이 양손을 승협의 머리 옆에 짚고 몸을 일으켰다. 바지 속 단단하게 일어선 물건이 승협의 다리 사이로 다가왔다. 승협은 묶인 손목을 약하게 비틀며 움찔거렸다.
상기된 얼굴을 갸웃거리며 한껏 재롱을 피우던 회승이 물었다.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승협은 다리 사이로 들어올 듯 말 듯 감질나게 구는 회승을 양 무릎으로 끌어안고 숨을 헐떡였다.
“뭐, 뭐라고? 회승아. 크게, 크게 좀 말해 봐.”
“형 뒤도 써 보셨냐구요.”
“아니, 자위할 때, 가, 가끔씩. 아닐 때는, 무서워서…….”
“그렇구나.”
웃음기를 되찾은 얼굴이 묻지도 않았는데 종알종알 대답을 늘어놓았다. 듣던 승협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묶는 것도 좋아하고, 처음도 좋아하고. 그래?”
“묶는 건 확실히 좋아하는데요. 후자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귀찮잖아요. 저는 떡을 치고 싶지 애를 달래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승협이 형은 왜 그럴까요?”
누구보다 애 같은 얼굴로 회승이 되물었다. 반대로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승협은 묶인 팔을 들어 회승의 목을 끌어안았다. 굳었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승협이 바지를 입고 셔츠에 팔을 끼운 다음 상처가 난 팔목에 연고를 주워 바르는 동안 회승은 어제 먹고 남은 찌개를 덥히고 냉장고에서 달걀 세 개를 꺼냈다.
“승협이 형. 달걀에 햄 넣어 드릴까요?”
“응. 맛있겠다.”
“이게 마지막 캔이에요. 이따 사러 가야겠다. 돌아가실 때 저 여기 앞에 마트까지만 태워 주세요.”
“그래.”
회승은 제가 장담한 대로 찌개를 정말 맛있게 끓였다. 칫솔까지 빌려 양치를 마친 승협이 시계를 보며 회승을 재촉했다. 꾸물거리던 회승이 현관에서 승협을 불렀다. 승협은 저리고 쑤시는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다 주춤거리며 다가갔다. 또 뭘 하려고? 쪽.
“히히.”
“야……. 너 좀 귀엽다.”
“아닌데요. 멋진 건데요.”
비가 더 많이 내렸다. 회승은 아예 슬리퍼를 신었다. 먼저 운전석에 오른 승협은 회승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다 웃으며 팔을 뻗어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우산을 접고 들어온 회승이 짝짝 박수를 쳤다. 이야, 센스.
“매너 있으시다.”
“너 아무리 그래도 이 겨울에 맨발은 과하지 않냐?”
“어차피 버릴 건데. 아니면요, 형이 또 따뜻하게 해 줘요. 저 카섹 한 번도 못 해 봤어요. 차 가진 친구들이 없어서.”
“뭐래.”
마트까지는 금방이었다. 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회승이 한 발짝씩 뗄 때마다 얕은 시냇물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운전석 쪽으로 돌아온 회승이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승협이 창문을 내리자 하도 비비적거려서 껍질이 일어난 입술이 다가왔다. 승협은 눈을 감았고, 감았다가 떴을 때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또 언제 볼 지는 모르겠지만요, 잘 가요. 형. 우리 다음에 꼭 봐요.”
“…….”
승협은 좁고 오래된 골목을 빠져나가 네 갈래로 길이 나누어지는 대로로 들어섰다. 신경이 쓰였다. 회승은 승협의 차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세차게 쏟아붓는 빗줄기에 금방이라도 망가질 것처럼 기우뚱거리던 우산도 자꾸만 생각났다.
그때였다. 승협의 눈에 커다란 구멍이 보인 것은. 승협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차에 든 사람도, 밖에 선 사람도 모두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넋이 나간 얼굴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은, 아니면 커지는 것일지도 모르는 하늘의 구멍을.
승협은 정신을 차리고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정리해 보려 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승협을 나무라는 사람들은 없었다.
회승은 곤란한 얼굴로 퍼부어지는 비를 노려보았다. 한동안 나올 생각이 없어 욕심을 부렸더니 카트 한 대치의 짐이 나왔다. 비를 맞는 건 무섭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쏟아지는 비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마음이 약해지니 무시하고 있던 추위도 회승을 괴롭혔다. 발이 가장 시려웠다. 열심히 꼼지락거려 봐도 감각이 없었다.
“어떡하지. 택시가 다니려나?”
남은 현금을 찾아 지갑을 뒤적이는 회승의 손에 어제까지는 없었던 물건이 들려 나왔다. 승협의 신분증이었다. 교복 차림이었는데 그때부터 얼굴을 잘 썼는지 사진을 찍는 자세며 표정이 자연스러웠다. 손때로 반질거리는 신분증에 쪽 입을 맞춘 회승이 현금을 셌다. 그럭저럭 택시비는 될 것 같았다. 마침 차 한 대가 마트 앞을 지나갔다. 회승은 보지도 않고 팔부터 휘저었다. 차가 멈추어 섰다. 회승은 우산이 뒤로 넘어가거나 하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고 카트를 끌어 차로 걸어갔다. 차 문이 열렸다. 회승이 차 앞에 다다르기도 전이었다.
“회승아.”
“어, 형?”
승협이 형. 회승의 입이 다물렸다. 그냥 그렇게 됐다. 너무 반가워서, 기뻐서, 좋아서, 입이 열리지 않았다. 회승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승협에게 뛰어갔다.
“어, 어떻게 왔어요? 나 집에 데려다 주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왜 없어. 타. 짐은 저게 다야?”
승협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회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협에게서는 회승이 잔뜩 묻혀 놓은 자기 냄새가 났다. 킥킥 웃은 승협이 짐을 옮기다 말고 그런 회승의 젖은 곱슬머리에 입술을 묻었다.
“너도 타야지.”
“문 안 열어 줘요?”
“아.”
승협의 허리에 찰싹 매달려 있던 회승은 승협이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자 냉큼 올라탔다. 승협도 우산을 접고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신이 난 회승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진짜 왜 왔어요? 형도 사실은 차에서 섹스 해 보고 싶었어요?”
“조금 솔깃하긴 한데, 두 번 묶이는 건 사양하고 싶네.”
“형은 안 묶을게요.”
“……음.”
승협이 고민하는 척하자 가슴을 가로지르는 안전띠를 만지작거리던 회승이 애가 타 끈질기게 졸랐다. 저 진짜 잘해요. 형도 인정했잖아요.
“차라고 침대랑 다를까요?”
“아니, 네 실력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아, 알겠어. 똑바로 앉아, 먼저.”
“네.”
주차장에는 물이 흥건했다. 시냇물을 넘어 강물 수준이었다. 회승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 듯했다. 회승의 입이 벌어지는 것을 본 승협이 말을 잘랐다.
“우산은 필요없지?”
“네? 이렇게 비가 오는데요?”
“어차피 벗을 거 아냐.”
“어. 진짜?”
묶지 않겠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졸딱 젖은 회승은, 마찬가지로 흠뻑 젖은 승협을 제 방으로 데리고 갔지만 묶을 끈 따위는 발에 걸리적거린다고 멀리 치워 버렸다. 승협은 성급하게 달려드는 회승을 양팔과 양다리로 끌어안으며 웃었다.
“왜 이렇게 급해? 비가 이렇게 오는데, 나 어디 가지도 못 해. 회승아.”
“그래도요. 좋아서요. 형, 진짜 왜 왔어요? 나랑 하는 섹스가 좋아서?”
“그것도 있고…….”
승협이 말을 흐리자 안달이 난 회승은 이까지 드러냈다. 제발요. 그러다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당황한 승협이 회승의 떨리는 뺨을 감쌌다. 회승은 계속해서 흐느끼고 울었다. 승협의 커다란 손도 다 받아내지 못할 만큼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
“너, 너 왜 울어. 회승아, 형 좀 봐 봐.”
“그냥요. 형이 이러고 그냥 가 버릴까 봐. 나 놀리는 걸까 봐.”
승협은 회승의 머리 뒤에서도 구멍을 보았다. 커지는 구멍을, 하늘을 집어삼키려는 것 같은 입을. 승협은 할 수만 있다면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승협이 손을 놓았다. 회승은 끈질기게 따라붙어 제 눈물로 미끌거리는 승협의 손바닥에 뺨을 문질렀다.
“어디 가요, 형?”
“안 간다니까. 못 믿겠으면 뭐, 묶든지.”
승협은 그 손을 가지런히 모아 회승의 눈앞에 내밀었다. 회승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눈으로 승협의 진심을 재 보려고 하다, 고개를 숙여 제가 만든 상처에 촉촉한 코를 문질렀다. 안 그럴 거예요.
“잘못했어요. 안 묶을 테니까, 그러니까. 형,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응. 이 비가 그칠 때까지 있을게.”
“진짜죠…….”
눈물을 그치고도 한참을 훌쩍거리던 회승은 그대로 승협의 가슴을 베고 잠들었다. 젖은 몸은 추웠지만 포개진 가슴에서 올라오는 온기가 승협의 눈꺼풀도 무겁게 만들었다. 승협은 회승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팔을 둘렀다. 회승은 잠결에도 있는 힘껏 승협에게 안겨 왔다. 승협도 더는 밀려드는 졸음에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