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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여름이 계속된 날이었다.

 

거슬리는 소리가 나던 미세먼지 경보는 울린 지 오래되어서,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마음껏 거리를 활보했다. 그 전까지 사람들의 얼굴을 가리던 흰 부직포로 만든 마스크는 쓸모를 다해, 저 구석 쓰레기통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터였다. 진열된 마스크들은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 대신 구석자리로 차츰차츰 밀려나다, 매대 한편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 후로도 구름이 모두 사라진 듯 아무 것도 없는 파란 하늘이 계속되었다. 달궈진 아스팔트는 화창한 하늘만큼 뜨거웠다.

 

이상하도록 비 소식이 없었다. 매년 여름 기분 나쁘게 양말을 적시던 비는 7월 늦도록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성봉은 그런 날씨에 의아해하면서도, 거치적거리는 우산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챙겨 다니던 작은 단우산도 현관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차피 이번 주 내로는 비 소식이 없었으므로.

 

 

“야 쌩봉!”

“어.”

“밖에 비와.”

“아 씨...”

“쌩봉 우산 들고 다니잖아.”

“오늘 안 들고 왔어.”

 

 

안 온다며. 성봉은 비어버린 가방을 허망하게 내려다보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에 들어오는 건 웃고 있는 김남구. 진짜 없어? 가방끈을 꼭 쥐고 있는 손에 기대감이 어렸다.

 

 

“진짜 없어.”

 

 

어쩔 수 없지. 남구는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 엉망으로 구겨진 체육복을 꺼내들었다. 뭐해? 비 맞으면 머리 빠져. 구겨진 체육복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너 그거 언제 빨았냐. 월요일. 이번 주? 얼마 안 됐네. 아니 저번 주. 와. 심하다. 어차피 비 맞을 건데 뭘. 가자. 주름진 체육복을 펴 머리에 쓴 남구는 그 자리 그대로 가만히 서 있는 성봉을 향해 손짓했다. 가방을 대충 머리에 쓴 성봉은 남구를 따라 밖으로 발을 딛었다.

 

오랜만의 비는 여태껏 마른 땅을 적시려는지 세차게 내려댔다. 체육복과 가방으로 막을 수 없을 만큼. 이정도면 우산 써도 다 젖었겠다. 축축하게 젖은 남구가 성봉을 쳐다봤다. 그러게. 가방끈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성봉의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야. 좀 쉬다 가자.

 

한껏 물을 머금어 색깔이 변해버린 옷에서는 한기마저 느껴졌다. 감기 걸리겠는데. 내일까지 마르려나. 남구는 머리에 쓰고 있던 체육복을 손에 쥐고 물을 짜냈다. 진한 청록색으로 변한 체육복에서는 막 세탁한 빨래마냥 물이 흘렀다. 이러다 내일 열나서 다 못 오는 거 아니냐.

 

성봉의 걱정이 무색하게 학교는 눅눅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개중에는 급하게 말려 입은 듯 뜨거운 바람 냄새가 나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소수였던 탓인지 금방 교실에는 눅눅한 비 냄새가 퍼졌다. 원래부터 그리 좋은 냄새가 나는 공간은 아니었으나, 냄새와 무게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공기는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짓눌렀다. 연필소리만 사각거리는 교실이 평소보다 더 조용해질 만큼. 쌩봉. 화장실 다녀온다. 하며 웃는 김남구만 아니었더라면 성봉은 그 교실에서 잠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쾅.

 

옆 교실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교실을 가득 메운 적막이 부서졌다. 괴성을 시작으로 책상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한성봉!!! 나와!!!”

 

 

뒷문을 부술 듯 열어재낀 남구가 성봉의 손을 낚아챘다. 미쳤냐?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여지껏 본 적이 없던 남구의 당황한 표정이 성봉의 입을 막았다. 성봉도 빠르긴 했지만, 축구에 미쳐 사는 남학생답게 복도를 질주하는 김남구는 확실하게 빨랐다. 그렇게 뛰어서 간 곳이 화장실이라 문제지.

 

 

“아 뭔데.”

“쌩봉. 나 좀비 봤다.”

“자습하기 싫어서 그러냐?”

“아닌데. 우리 친구, 친구를 못 믿으면 어떡해.”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성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숨을 돌리려 들어온 화장실의 공기가 교실의 그것만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야 이게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구의 손이 성봉의 입을 막았다. 쉿. 무거워진 공기가 울리는 느낌과 함께, 남구의 말을 빌리자면 가래 끓는 소리가 간이 벽을 뚫고 들어왔다. 좁은 칸 안에서 움직일 생각도 못한 채로, 평소 같으면 징그럽다고 말했을 정도로 둘은 꼭 붙어서 벽 사이 틈에 눈을 갖다 댔다.

 

 

“야 쌩봉, 보여?”

“아니.”

“너 눈 좋잖아!”

“야. 나 눈 나쁘거든.”

“미안.”

“...야.”

“엉.”

“저거.”

“내가 말했잖아! 좀비라고.”

“와.”

 

 

목을 한껏 늘어뜨리곤 무언가를 찾아 배회하는 그 형체를 본 성봉은 허, 소리를 내며 남구를 쳐다봤다. 맞지. 내 말. 뿌듯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표정을 본 성봉은 사라진 어이를 찾으며 뒷걸음질치다, 삐걱거리는 간이 벽에 몸을 부딪혔다. 아. 좆됐다. 그르륵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져옴과 동시에 남구가 하나, 둘, 셋. 숫자를 셌다. 문 바로 앞에서 소리가 들리자마자 성봉에게 찡긋, 윙크를 날린 김남구는,

 

문을 세차게 열어젖혔다. 앞에 다가온 그 형체가 열어젖힌 문에 맞아 기절할 만큼. 나이스. 엄지를 치켜 올린 성봉과 뿌듯하게 웃는 남구는 뒤이어 가까워져오는 괴성에 치켜 올린 엄지를 접어들고 뛰기 시작했다.

 

 

“쌩봉, 들어봐. 우리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어.”

“뭔데.”

“일번. 저어기 운동장 가로질러서 정문으로 튄다.”

“저 앞에 선생님 좀비 되서 돌아다니는데.”

“빠르게 다음 방법.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서 헬기를 기다린다.”

“헬기가 온대?”

“자 세 번째. 일단 매점을 확보한다.”

“콜.”

 

 

그 뒤엔 어떡하지. 몰라. 일단 뛰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대. 뒤를 따라오는 괴성을 뿌리치고 도착한 매점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야. 잠겼어. 굳게 닫힌 문을 덜컹거리던 성봉 옆에서, 남구는 마치 밟고 올라가라는 듯 놓인 실외기를 밟고 좁은 창문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낑낑거리며 남구를 따라 올라간 성봉은 제가 들어온 창문을 닫아 잠갔다. 평소라면 시끌벅적했을 매점은 불이 꺼진 채 조용했다. 남구는 그 언젠가 매점 아주머니가 듣던 라디오를 찾아 매대를 뒤졌다.

 

 

“찾았다.”

 

 

더듬이가 하나만 달린 라디오는 지직거리며 말을 뱉어냈다.

 

현재 원인을 알...없는 괴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며...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학...들은 바이러스의 원...이 몇 년만에 찾..... 가뭄....것으로 예상하고 있...니다. 감염자에게 물...거나 체액을 교환하는 형태로.... 되는 것으로 보이며, 국민....들게 각...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감염...않은 생존...분들은 동만 중앙... 체육센터로 와....시기 바랍니다.

 

지지직거리던 라디오는 버겁게 소리를 이어가다 이내 소음에 묻혀 먹통이 되었다. 손으로 두어번 나오지 않는 라디오를 치던 남구는 성봉이 마시던 음료수에 시선을 돌렸다. 나도. 자. 주머니를 뒤적거려 몇 개의 동전을 더 꺼낸 성봉이 음료수를 남구에게 건넸다.

 

 

“뭐하게.”

“안 물리면 된다는 거잖아.”

“그건 그런데.”

“나중에 돌아오시면 드릴거야.”

 

 

막무가내로 뜯은 과자봉지를 팔에 둘둘 감은 남구는 또 다른 과자를 뜯어 한 봉지에 몰아넣고는 남은 봉지들을 포개 성봉에게 던졌다. 가자. 어? 어. 음료수를 마시던 성봉이 던져진 봉지들을 받았다.

 

 

“야.”

“엉.”

“목은. 보통 영화에서는 목 물리잖아.”

“아.”

“자.”

 

 

고민하던 남구의 손 위로 비닐에 든 얇은 앞치마가 떨어졌다. 일주일에 몇 번 들지 않은 미술시간에나 쓰던 앞치마를 목에 둘둘 감은 채, 팔에는 과자봉지를 감은 모습이 퍽 우스워서, 성봉은 웃음을 터뜨렸다. 가자. 김남구. 어.

 

 

“김남구. 우리 물리지 말자.”

“당연하지.”

 

 

안에서 잠긴 문을 달각거리며 열자, 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매점으로 다가왔다. 색색깔의 포장지로 무장한 둘은 어두워진 틈을 타 조용히 발을 옮겼다.

 

바스락거리는 바람이 둘을 스쳐 나뭇잎 사이로 지나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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