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는 자신이 드디어 묵시록을 해독했노라고 말했다.
서기 2011년,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 수백 수천의 죽음이 대지를 휩쓸고 메뚜기 떼가 몰려들어 눈알을 먹어치울 것이다. 피로 흐르는 강이 풀숲에 고이고 바다가 될 무렵 백 년간 그치지 않을 비가 내릴 것이다. 그러나 교에 따르사 이는 해방의 전언일지니, 속된 것을 멀리하고 교에 헌신하면 막일이 닥치기 전 구원이 내릴 것이다. 우주에서 온 최후의 신도들이 하여금 그들을 이끌어 내세에 속박되지 않게 하니 이를 보아 그들이 마지막으로 짊어지는 죄라 하더라.
그러나 아직 신도들에겐 전달되지 않은 기록이었다.
몇 번이고 단어를 더듬고 연습하는 목소리가 부엌 안쪽 사무실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선언의 웅장함을 살리기 위해 미리 연습해두려는 것 같았다. 훈은 귀에 뚜껑이 있다면 닫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 부엌에 그들이 남았다는 것마저 잊은 게 분명했다.
저녁 집회 직전의 저녁시간이었다. 오늘도 토라진 훈을 대신해서 동성은 밥을 두 그릇 먹었다. 힘없는 숙주나물과 희어빠진 배추김치, 정체를 모르겠는 희뿌연 국물, 말라비틀어진 고등어조림이 오늘 저녁의 메뉴였다. 훈은 길고 좁은 탁자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뻑뻑하다 못해 된 밥을 우물거리는 동성의 부푼 볼을 쳐다봤다. 저보다 작고 어리고 말랐는데도, 잘 먹었다. 동성은. 먹을 게 있어도 먹었고 없어도 먹었다. 그럼에도 비쩍 말라서 훈보다도 다리가 얇았다. 훈은 사무실 문을 두드려 -이때 안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황급히 멈췄다- 빈 밥그릇을 원장에게 보여주고서야 동성과 나란히 텅 빈 고아원 부엌을 나설 수 있었다. 동성이 훈의 곁에 남아있는 것은 잦은 일이었으므로 원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식당의 미닫이문을 열고 나오면 훤히 드러난 마당 너머로 곧장 집회당 본관이 보였다. 문 옆으로 문보다 거대한 십자가도 함께 보였다. 누군가 못 박혀 매달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얼굴이 익숙했다. 얼굴이 네모나게 각진 원장을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살진 부원장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원장이 큰돈을 주고 직접 제작해온 것이었다. 취향이 괴악했다. 주님이라고 말해도 될지 허용할 수 없는 그것은 일반 사람과도 같은 모양새로 그곳에 못 박혀 계셨다. 그들이 믿는 건 주님이 아니니까, 그렇게 부를 순 없겠지.
훈은 그곳을 지나가며 자주 그의 발 크기와 자신의 것을 대조해보곤 했다. 자주 자길 걷어차는 부원장의 것과 비슷한 크기였다. 언젠가 제 발이 그 둘보다 더 커질 것이다. 훈은 쫄쫄 굶은 배에서 소리가 나려는 걸 움켜쥐며 걸음을 재촉했다. 억지로 욱여넣느라 배가 과하게 부른 동성이 낑낑거리는 모양새로 뒤를 쫒았다. 아무것도 넣지 못한 배가 가벼운데도 걸음은 가벼워질 생각을 않았다. 언제쯤에야 몸이 가벼워질런지 알 수가 없었다.
끙끙거리며 밀고 들어간 현관에선 눈알에 와닿는 공기부터가 시렸다. 길다란 의자에 앉아 있던 승협이 고개를 들었다. 훈과 동성과 나란히 누추한 백색 옷을 입고 있었다. 백색이라기보다 누런색에 가까웠다. 아무리 세탁을 해도 희어질 생각을 않았고 그래서 어떤 오물과 때를 묻혀도 티가 나지 않았다.
훈은 그대로 2층에 올라갈까 고민하다가 저를 제치고 걸어가는 동성의 갈색 머리통을 봤다. 동성은 승협에게서 두 뼘 정도 떨어져 앉아 훈을 바라봤다. 어서 안 오고 뭐하냐는 표정이었다. 훈은 할 수 없이 나란히 옆에 앉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띄엄띄엄 떨어진 아이들. 아무도 사가지 않는 멋없는 조형물 같았다. 승협은 평소엔 그리도 귀여워하던 동생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른 생각에 깊게 잠긴 것 같았다. 이마에 깊게 그려진 주름이 하나일 때는 기도, 두 개일 때는 가족들, 그리고 세 개일 때는, 아무도 모르는 승협만의 생각들. 훈이 알기로 승협이 고민하는 것들은 주로 그랬다.
집회실의 무거운 문을 힘겹게 밀고 나타난 회승이 세 사람을 조심스레 불렀다. 혀어엉. 도옹서엉아아. 입을 크게 벌려 뻐끔거리는 뒤로 커다란 몸이 나타나 문을 확 밀어젖혔다. 손잡이에 매달려 있던 회승이 넘어질 듯 기우뚱거리는 건 아랑곳도 않았다. 무엇들 하느냐, 들어와 식후 기도를 드리지 않고. 엄중한 목소리가 드높았다. 부원장이었다. 승협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서둘러 움직이는 발걸음 끝에 훈은 가장 마지막까지 머뭇거리며 맨 뒤를 따랐다.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집회당 안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나 아이들로 드문드문 차 있었다. 주로 소리 내는 것은 노인들이었고 입 다문 것은 아이들이었다. 나란히 나열된 의자 앞으로 노랗고 파란 매트가 깔린 바닥이 있었다. 원장이자 교주에게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위치였다.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재현도 그 중 하나였다. 승협은 의자 맨 앞까지 걸어가 신발을 벗어두고 매트에 앉았다. 훈은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의자 중간 즈음에 앉았는데 동성도 따라 왔다. 회승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더니 불쑥 나타나 승협의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어느덧 문 안쪽에서 원장이 나타나 사람들을 살폈다. 사람 하나하나의 얼굴을 잡아먹을 듯 외우는 눈길에 두피까지 싸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선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 제가 좋은 기를 이곳에 깔아놨습니다. 이 기운이 느껴지십니까. 정말 따뜻한 공기가 내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훈은 가득 틀어진 보일러가 졸립다고 생각했다. 환기되지 않은 공기가 텁텁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훈은 아까 들었던 희미한 목소리가 지금 커다랗게 다시 반복되는 것을 들었다.
종말, 멸망, 해방, 구원, 죄.
장장 12년에 걸친 해석 작업이었노라고, 거대한 면포를 치렁치렁하게 걸친 원장이 말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원장이 내놓은 묵시록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하나였다. 이 땅은 멸망할 것이다. 사람들은 전부 죽어버릴 거다. 어린 동성은 겁을 먹고 훈의 팔뚝을 부여잡았다. 집회당 내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이 하나둘 탄식의 말을 뱉었다. 신의 말씀을 듣고 그를 인간의 언어로 옮겨 적는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침 튀겨 말하는 원장의 얼굴은 과연 처음 보았던 2003년, 그러니까 8년 전보다 폭삭 늙어 있었다. 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원장의 주름진 눈가를 노려봤다. 정확히는 그 아래 무릎 꿇고 원장을 올려다보는 재현의 까만 뒤통수였다. 아무리 노려봐도, 당연하겠지만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우린 모두 서둘러 준비해야 합니다. 종말이, 해방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해방, 해방, 해방, 신도들의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와 동조하는 목소리가 강당 내에 우우 울려 퍼졌다. 모두 아침이며 저녁이며 동네에서, 혹은 집회가 있는 화요일, 금요일마다 당 내에서 얼굴을 보는 익숙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마을회관 옆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백씨 할머니는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수박 농사를 짓는 강씨 아저씨는 옆에 있던 자신의 아내를 끌어안았다. 그 어딘가에 보육원의 아이들은 병균처럼 퍼져 있었다. 승협은 원장을 빤히 올려다봤다. 회승은 들은 체도 않고 옆에 앉아 있는 승협의 길쭉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동성은 뒤에서 흥분에 도취되어 등을 퍽퍽 두드리는 아저씨의 손길을 따라 자신도 박수를 쳤다. 훈은 아직도 재현의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훈은 재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적어도 자신처럼 이 사이비 무리에게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은 아니라는 게 확실하긴 했다.
집회가 끝났다. 사람들은 곳곳에 모여선 종전의 집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묵시록의 구체적인 완결이 밝혀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소란스러웠다. 다만 흥분으로 가득 찬 열기도 아이들의 싸늘한 공간을 마저 데워주지는 못했다. 동성이 어깨를 바르르 떨며 겉옷을 주워 입었다. 목청 좋은 남자 몇몇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승협은 옷 위로 솜 잠바를 덧대 입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종말 일자가 확정지어졌다. 날짜는 승협이 보육원을 떠나기 전이었고, 그건 승협이 결국은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못할 거란 말을 뜻했다.
승협은 아직 바깥 세상에 나가보지 못했다. 대학도, 휴대폰도, 독립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일 등등 승협으로써 원했던 그 무엇도.
전라북도 고창군 해룡리.
보육원이 위치한 지역이었다. 시골이라 온통 논과 밭이 가득했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길게 굽이쳐 모여 있었고 한가운데 마을 회관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주로 보육원이 있는 본관에만 오갔다. 보육원에서의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인사하거나 가끔은 소소한 주전부리를 건네기도 했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회승은 멍이 든 손목을 손 뒤로 숨겼다. 감사합니다. 재현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갈 곳 잃은 초콜릿을 대신 받았다.
보육원이 위치한 지역이었다. 시골이라 온통 논과 밭이 가득했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길게 굽이쳐 모여 있었고 한가운데 마을 회관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주로 보육원이 있는 본관에만 오갔다. 보육원에서의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인사하거나 가끔은 소소한 주전부리를 건네기도 했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회승은 멍이 든 손목을 손 뒤로 숨겼다. 감사합니다. 재현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갈 곳 잃은 초콜릿을 대신 받았다.
아직도 몇몇 노인들은 왜 교회에 오면서 성경을 가지고 오면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이 외치는 해방의 순리는 이해했다.
해방. 그들을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저 우주로 나아가게 하는 행위. 언젠가 종말할 이 세계에서 외부의 구원은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지켜야 할 것 몇 가지. 늘 몸을 정갈히 하여 외부의 오염이 없도록 한다. 두 번째, 언젠가 우주에서 내려올 구원을 위해 몸에 금속 물질을 지니지 않는다. 외계에서 내려줄 기계의 힘을 동원한 탈출로의 작동이 어려워질 거라는 게 이유였다. 비행접시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부원장은 종종 그 둘을 햇갈려했다. 세 번째. 교리를 마음 속 깊이 지니고 언제나 암기하여 그들이 물어왔을 때 한 치의 오류 없이 답해 신앙을 증명 받아야 한다. 특히 일상생활에서는 두 번째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훈은 아직 핸드폰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유로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마저 부끄럽게 여겼다. 언젠가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는 일마저 오염된 기를 받아들이는 부끄러운 짓이라고 원장이 열변을 토한 후에는 집집마다 고철덩어리들을 집 앞에 가득 내놨다. 근처의 고물상이 트럭으로 전자제품들을 그득하니 실어갔다. 빨래 또한 손빨래로 이루어졌는데, 이건 아이들이 했다. 대놓고 휴대폰을 쓰는 사람들도 조금씩 줄었다. 다만 부원장은 가끔씩 부엌 뒤켠을 어슬렁거리며 손바닥 절반만한 폴더폰으로 통화했다. 그래놓고서 아이들 중 누군가 지나가면 혼을 냈다.
재현이 훌쩍이며 볼에 멍이 든 채로 돌아온 날이 있었다. 승협이 재현을 꼬옥 안아주고, 옆에 앉아 있던 회승이 바싹 마른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훈은 재현이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며 바르게 누웠다. 종말하는 세계에서 부원장이 허겁지겁 핸드폰을 내던지고 구원에 탑승하려 아등바등 거리는 상상을 했다. 두꺼운 손이 던진 핸드폰은 아무리 몸에서 떨어트려도 끝도 없이 발목에 손등에 살진 허벅지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손이 떨어지고 불타는 땅에 그의 발과 주먹과 머리까지 모두 버려지는 상상을, 훈은 했다. 즐거웠다.
종교의 날, 그러니까 해방의 날에는 점심으로 맛있는 게 나왔다. 동성과 재현이(그리고 이제부턴 회승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기도 했다. 건물 앞으로 크게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고 늘 아이들을 가로막던 대문이 활짝 열려 사람들이 쉼없이 들어왔다. 회승은 그 앞에 빤히 서서 플랜카드에 적힌 글씨들을 올려다보았다. 옆으로 다가온 승협이 회승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안았다.
"뭐 보고 있어, 승구야?"
회승이 팔을 뻗어 플랜카드 아래쪽을 가리켰다. 궁서체로 굵게 적혀 있는 글씨가 보였다.
해방의 날. 2011년 10월 23일. 조 득녕.
"오늘 원장님 생일이에요."
승협이 따라서 플랜카드를 올려다봤다. 현수막 안에서 웃고 있는 원장의 얼굴이 펄럭거리는 바람에 날려 파도쳤다. 종교의 날이라는 글씨도 함께였다.
"그렇구나."
마당에서 달려 나온 동성이 신이 난 얼굴로 둘을 불렀다. 형, 형, 이거 안에서 주셨어요. 하면서 반투명한 막대사탕을 하나씩 손에 안겨줬다. 승협의 것은 빨갰고 회승의 것은 노랬다. 고마워. 대답한 승협이 동성도 꽉 끌어안아서 들어올렸다. 히히 웃는 동성의 가늘고 마른 몸이 금방 땅에서 떨어졌다. 그 옆에서 회승은 승협의 등 뒤에 숨어 마당 안쪽을 노려봤다. 싱글벙글 웃는 사람들이 축하의 말이나 선물 따위를 건냈다. 원장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해방의 인사를 건넸다. 메롱. 원장 모르게 몰래 혓바닥을 내민 회승이 승협의 옷을 붙잡아 뒤로 쏙 숨었다. 걸리면 궁둥이를 맞을 게 뻔했다.
재현은 그 때 마당 구석의 돌벽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아까 훈이가 나오기 싫다던 걸 간신히 끌어냈는데 어디로 갔는지 또 사라져 있었다. 그게 재현은 못내 속상했다. 오늘은 좋은 날인데, 일 년에 한 번만 있는 멋진 날인데도 훈은 언제나 그랬다. 원장님의 믿음을 거부하고 자꾸 저 혼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구석에 틀어박히곤 했다. 매번 혼이 나고, 타박을 당하면서도 변하질 않았다. 그 특유의 뚱한 표정은 재현을 보면서도 비슷했다. 훈이는 나를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를, 아니면 원장님을? 자꾸만 자길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훈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이따금 뒤를 돌아봤을 때 자기를 노려보다가 코웃음치며 사라지던 걸 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훈이는 왜 그러는 걸까. 진실된 믿음으로 함께 하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텐데. 우리는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해방교를 통해 재현은 행복해졌으니까. 훈이가 언젠가 진심으로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재현은 생각했다. 훈은 재현의 소중한 사람이고, 아주 오랫동안 함께 했던 가족이었다. 네가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더 이상 맞지도 않고 혼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재현은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손바닥에 파묻었다. 세 번 숫자를 세고서야 일어나려고 했는데, 다섯을 세는 도중 어깨를 두드려오는 주먹쥔 손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저를 내려다보는 훈이 보였다. 바로 옆으로 태양이 떠서 한껏 밝아 보였다. 재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도 실실 베어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저를 향해 내밀어진 손을 잡아당겨 일어났다. 야, 야! 일으켜주려던 건 아니었던지, 그냥 힘이 모자란 건지 기우뚱거리던 훈이 급한 타박을 내뱉었다.
"재현이 너는 싫다는 사람 데리고 나온 주제에 혼자 구석에 처박혀 있냐?"
"먼저 사라진 게 누군데?"
"나는 초콜릿 가지러 간다고 했잖아. 바보 아냐?"
"바보 아니거든!"
씩씩거리던 재현이 금새 표정을 풀고 웃었다. 훈이 내민 주먹 안에 초콜릿 세 개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모낳고 두툼한 초콜릿이, 금색과 파랑과 빨강의 포장지로 각각 세 개.
"너 단 거 싫어하니까 다크초콜릿으로 가져왔어."
재현은 두 개를 집어 반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훈의 우악스러운 손길로 다른 하나까지 주머니에 쑤셔넣어졌다. 다 먹어, 다. 저기 더 있으니까 이따가 가지러 가자. 한 번에 많이 가져가면 혼나. 훈이 몰래 소근거리며 자기의 볼록한 주머니를 보여줬다. 히죽거리며 웃던 재현이 훈의 초콜릿으로 장난을 치다가 우리 이거 회승이랑 다른 애들도 주러 가자. 하고 속삭였다. 훈이 재현의 손을 잡았다. 손목 위쪽으로 드러난 맞은 자국은 누구의 것인지도 몰랐지만 둘 다 눈치채지 못했다. 주머니가 볼록해진 애 두 명이 나란히 손을 잡고 어른들의 눈을 피해 뛰어가는 모습, 볼 만 했다.
한가을의 꿈만 같았던 축제는 금방 끝났다. 어제만 해도 푸르게 드높았던 하늘도 오늘은 유독 회색빛으로 침침하게 느껴졌다. 회승은 조금 슬퍼 보였는데 어제 받은 사탕들을 아껴 먹으며 기운을 차리려는 것 같았다. 승협은 자기가 주워 모은 사탕이나 젤리 따위의 간식거리들을 거의 다 동생들, 특히 회승의 보물상자에 넣어 주었다.
잠잠해진 사람들은 다시 매일같이 종말을 예비하러 모였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갈 곳이 없었다. 그마저 시간을 때우던 텔레비전조차 사라졌다는 게 긴 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최소한의 사회 뉴스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조차 마을로 들어오지 않았다. 집회당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마을 회관엔 잘 모이지 않았고, 자동차가 없는 노인들은 제 발로는 마을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살 게 있으면 회관 옆 작은 슈퍼에 가거나 차가 있는 장년층에게 부탁했다. 그들이 밖에 나갈 일이라곤 가끔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버스를 끌고 와 노인들을 단체로 태워 가 정기검진을 받는 게 특별한 행사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가지 않는 사람들은 언젠가 종말하고 나면, 해방되고 나면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걸 듣는 아이들도 간간히 종말과 해방이라는 단어를 따라 읊었다. 색이 바랜 도로에는 종종 트럭들이 떨어트리는 황토색 흙덩이들이 도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보육원 앞에 있는 봉고차에도 조명등에 작은 날벌레들이 조명이 까맣게 보일 정도로 다닥다닥 달라붙어 죽어 있었다.
원장은 종종 다른 이야기를 또 했다. 인간의 정신은 외계를 관통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그들에게선 온 몸에 새파란 기가 흐르는데 그것은 우주가 영적인 기가 가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석하게도 두터운 막이 지구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 기를 완연히 흡수하지 못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다르다. 그것이 바로 여기 선 본인이다. 원장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몸에는 짙은 기가 흐르며 영혼의 색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아픈 사람에게서는 그 곳의 검은 기운이 보입니다. 곧 아프거나, 지금 아픈 곳.
그렇게 말하며 원장은 자신의 가슴팍을 쓰다듬었고 어느 노인의 다리를 가리켰다. 늘 걸음을 절뚝이느라 유모차를 끌고 오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감탄사를 뱉었다. 옆에 앉아 있던 재현이 우리는 무슨 색일지 궁금하다, 그치 훈아, 하고 속삭였다. 훈은 재현에게 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일 거라고 속삭였다가 원망에 찬 눈길을 받았다.
종종 원장은 신내림을 받기도 했다. 고개를 털고 몸을 움직이며 고함을 질렀다. 집회당을 빼곡하게 매운 외부의 신도들이 아아, 소리를 내다 비통하게 울다 쓰러지거나 했다. 주여, 신이시여, 구원, 해방, 부르는 이름도 재각기 달랐다. 가끔 원장의 본명을 부르기도 했다. 조 득녕, 조 득녕. 울음 속에선 발음이 흐려져서 가끔 등녕, 등녕 하고 들리기도 했다.
정신 나간 새끼들이, 하나만 할 것이지 종교를 모두 쌈 싸먹었다. 훈은 혼자 팔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 비루먹을 헛소리가 사실은 수십 종교 혹은 사이비의 집합체라는 사실은 훈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특히 어릴 적부터 이 보육원에서 자란 애들은 더욱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니 주님이라 불리는 자가 엉겁의 시간을 거쳐 깨달음을 얻고 해탈한 것인지 폭포수 아래의 바위가 신의 인도를 받으사 인간으로 변하여 세상 모든 미물의 죄를 업고 사형에 처해진 자인지 알질 못했다. 미친 놈, 미친 놈들. 가지가지 하는 자식들. 장내를 가득 매운 어른들에게 훈은 몇 번이고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재현은 그들 중에서는 가장 들어온 지 오래된 애였고 가장 아무것도 몰랐으며 가장 믿음이 신실한 자였다. 그 다음으로 승협, 훈, 동성, 회승.
그리고 승협은 게중 가장 먼저 나가게 될 것이다. 만 18세가 다가오기까지 채 3개월도 남지 않았다. 보육원이 맞는 첫 번째 이별이었고, 그걸 가장 무서워 하는 건 회승이었다.
마을의 평균 인구는 장년층을 웃돌았다. 해방의 언어로 마을 전체를 역병처럼 뒤덮고 있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니 언젠가 쇠락할 종교였다. 새로이 주입되는 젊은 피가 필요했다. 당장 어린아이는 마을의 아이 두세 명이 전부였고 그를 제외하면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마을 아이의 전부였다. 열 명 언저리의 십 대 아이들. 모두 원장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가여운 새싹을 거두어 선량한 마음과 신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증명하기 위함인지, 아이들은 얼마 지급되는지도 모르는 국가의 보육료가 이유인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세뇌시킨 이들을 사회에 내보내 몸집을 불리고자 하는 큰 야망인지, 훈은 몇 번이고 원장의 셈을 헤아려보다 말았다. 마을 어른들은 원장을 세상에 다시 없이 좋은 사람으로 여겼으니 1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가끔 보육원에는 소소한 간식거리가 들어왔다. 오늘은 귤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각자 귤을 한 알씩 받은 아이들이 쌩하니 흩어졌다. 고작 세 개 있는 방에는 아이들이 각각 네다섯 명씩 들어차 있었다. 다섯 명이 눕고도 한 명이나 더 누울까 말까한 좁다란 방이었다. 여자아이들은 4층, 남자애들은 3층. 훈은 어디서 빼돌렸는지 귤을 두 알 들고 들어왔다. 이미 앉아 있던 회승이 고개를 돌려 훈에게 인사했다. 동성은 책상에 기대 다 먹은 귤 껍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픈 팔뚝을 주무르던 훈이 자기 손에 들려 있던 귤을 한 알씩 동생들에게 내밀었다.
내 것도 먹어.
감사합니다.
동성이 웅얼대며 귤을 받더니 냉큼 까서 제 입에 넣었다. 오래된 형광등이 침침한 빛으로 가끔 끔뻑거릴 때마다 아이들의 눈도 번쩍 감겼다 뜨였다. 승협은 휴지를 들고 있다가 가끔 동생들이 즙을 흘릴 때마다 손에 한 장씩 쥐여 줬다. 재현은 귤에 붙은 하얀 실오라기를 하나씩 떼어내다가 이따금씩 문쪽을 살폈다. 이렇게 먹는 걸 걸리면 혼이 났다. 모두 골라내고 귤껍질에 싸 얼른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재현이 완전한 주황이 된 것을 하나씩 떼어 먹었다. 귤이 시고 달았다. 주변엔 온통 신내로 가득 찼다. 입에 침이 고였다.
"훈아."
"왜?"
"귤 많이 먹어야 몸에 좋대."
듣고 있던 훈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확히 어디에 좋은 거지?
"몸에 좋은 거 니들 많이 먹어."
"이잉, 먹기 싫어?"
"응. 씹는 것도 귀찮고 더부룩한 것도 싫어."
귀찮은 표정으로 눈을 굴린 훈이 옆에 나란히 앉아 귤을 까먹는 애들을 쳐다봤다. 옹기종기 보여 있는 몸들이 작았지만서도 처음 들어왔던 예전보단 많이 커져 있었다. 특히 막내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 배를 걷어차는 발길질을 생각했다. 다른 애들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굵은 다리는 동성이의 작달막한 몸을 연신 밟거나 때린다. 배를 걷어차인 회승은 구역질을 한다. 먹은 것도 없어서 빈 위장에서는 위액밖엔 나오지 않는다. 잘못했다고 비는 동성이의 얼굴은 제 얼굴이 되고 어느새 시야는 1인칭이 된다.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 무어라 내려앉는 폭력같은 말소리, 새까만 제 손의 윤곽밖엔 보이지 않는 실내. 훈은 고개를 털어 상상을 훑어냈다. 김재현이 동성이가 먹다 남긴 귤 껍데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승협의 허벅지에 드러누운 회승이 작은 입을 벌려 하품을 했다. 다가오는 것도 알 수 없는 폭력. 언제든지 머리를 걷어차고 목을 조를 수 있는 신. 훈은 벽에 머리를 기대 누웠다.
나 부원장 그 놈 죽여버리고 싶어.
어느 날 훈이 말했던 날이 있었다. 훈의 배에 피멍이 들고 재현의 머리에 뒤로 밀쳐져 생긴 혹이 났을 때였다. 빨래에 얼룩이 남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난방이 미적지근한 싸늘한 방에서 동성과 승협과 회승이 한 이불을 덮고 웅크려 자고 있었다.
훈아. 그러면 안 돼. 원장님의 말씀을 따라야지. 속된 말 하지 말고, 마음 곱게 먹고.
재현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부르튼 훈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재현의 손은 훈의 것보다 조금 컸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맞잡아온 손이었다. 재현은 도대체 얼마나 예전부터 여기 있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예전부터 해방을 읊었을지도. 재현이는 떠나고 싶을까. 떠나고 싶지 않을까. 사실 답은 알았다. 재현을 두고 가겠다는 마음은 자꾸만 피어오르면서도 섣불리 머리를 드밀지 못했다. 훈도 재현을 따라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숨을 쉴 때마다 아까 걷어차인 복부가 아팠다. 그러니, 그럼에도,
"바보야."
"……"
"난 해방이고 구원이고 신이고 다 필요 없어. 여길 떠나서 도망칠 거야."
"그러지 마. 말씀을 어기려 하지 마. 훈아."
"너도 같이 가자. 다 같이 가."
재현은 심장이라도 떨어진 모양새로 훈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급히 문 너머의 눈치를 봤다. 혹시나 방금 훈의 말이 문 밖에 들렸을까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세 사람이 잠든 방은 적막으로 가득 차서 두 사람의 목소리부터 호흡하는 진동까지 전부 다 들렸다.
"그건 불가능해. 그게 될 리가 없어. 여길 떠나면 우린 버려질 거야. 신이 아니면 누가 우릴 품어주시겠어. 누가 우릴 먹여주고 재워주시겠어…."
몸을 앞으로 숙인 재현이 훈의 손을 아프도록 꽉 붙잡았다. 얼핏 간절했고 언뜻, 훈에겐 무서웠다.
"해방되어야지, 우린 구원받아야 하잖아. 그래서 지금까지 믿어왔잖아. 도망치지 마, 훈아."
재현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훈을 보았다. 심장이 저릿했다. 날 버리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아서, 훈은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울려는 건 재현이었는데 제 목구멍에 물기가 서렸다.
세상이 종말할 거야. 회승은 이불 속에서 눈을 뜨고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비슷한 음절의 단어를 들을 때마다 입속으로 말들을 되새겼다. 종말이든 해방이든, 빨리 했으면 좋겠다. 회승은 종말을 무서워하는 재현과도 해방을 불신하는 훈과도 생각이 달랐다. 세상이 종말하면 승협은 혼자 가지 않아도 된다. 회승은 승협 없이 이곳에 남겨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회승은 우주로 떠나는 것도, 승협 없이 여기 처박히는 것도 다 싫었다.
회승은 이불 속에 숨긴 조그만 폴더폰을 만지작거렸다. 통화도 무엇도 되지 않는 분홍 공기계에 불과했지만 회승에게는 유일했다. 생선을 낚는 펭귄 게임도 가능했고 예전에 보낸 문자를 읽을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회승은 얼마 전 보육원에 입소하면서 용케도 핸드폰을 걸리지 않았다. 저를 무겁게 내려보는 어른들을 보며 몇 번이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말하기 싫었다. 들어와서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핸드폰을 제일 싫어하는 것도 재현이었고, 제일 좋아하는 것도 재현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게임을.
이게 있으면 난 버려질까? 지옥에라도 가나? 모르겠다.
이 곳의 언어는 외국어라도 하는 마냥 온통 낯설었다. 해방이니, 종말이니, 밖에서 배운 것과는 천지차이인 이야기 뿐이어서 처음에 회승은 자기가 미치기라도 한 줄 알았다. 잠이 오지 않는 눈을 끔뻑거리던 회승이 비어있는 승협의 손을 쥐었다. 자길 가장 처음으로, 가장 따듯하게 맞아준 손. 불이 꺼지고 재현과 훈이 펼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꼼지락거리는 몸에서 온기가 와닿았다. 우리가 해방된다면, 우리는 거기서도 이렇게 다 함께 잠들게 되나? 우주에 이불은 있을까? 원장님이 말하는 해방은 뭘까, 훈이 형이 도망쳐서 가고 싶은 곳은, 뭘까?
동성이 몸을 뒤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생각은 끊겼다.
며칠이 되었든 시간은 느리지 않게 흘렀다. 훈은 매일같이 갈등했다. 떠나야 했다. 떠날 수 없었다. 재현은 감시라도 하는 마냥 훈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동성도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아는지 멋모르고 그 둘의 뒤를 따라다녔다. 재밌어보인 승협이 동성의 뒤를 따르면 회승도 냉큼 곁을 따랐다. 팔자에도 없는 기차놀이라도 하는 모양새가 매일을 반복됐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귀여운 녀석들, 하며 웃었다. 어차피 밤에는 원장을 보며 오열할 인간들이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재현의 온갖 방해공작-주로 칭얼거리기-에도 훈은 언제나처럼 밥을 잘 먹지 않았고 슈퍼에서 과자를 사먹으라며 받거나 간간히 훔치기도 하며 모은 용돈들을 살피기도 했다.
날이 지날수록 방의 분위기는 조금 더 불안정해졌다. 승협은 묵묵히 공식적이며 법적으로 강제된 독립을 위해 준비했다. 동성은 자주 배를 곪는 듯한 허기를 느꼈고 회승은 이따금 외로웠다. 그런 와중에도 종말의 날이 다가왔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12월의 막일은 묵시록이 예비한 마지막 날이었다. 훈이 도망치려다가 동성을 돌아보고 포기한 날이기도 했고, 승협이 짐을 쌀지 마지막으로 고민한 날이기도 했다.
결국 훈은 도망치지 못했다. 승협은 짐을 싸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종말을 맞을 대비를 했다. 언제든지 우주선인지 열린 문인지 부원장이 아직도 햇갈리는 뭔가를 타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휴대폰과 온갖 전자기기를 집이나 어딘가에 내버렸다. 모든 속된 것을 멀리하기 위해 제 직업과 삶과 몇몇 신앙에 동조하지 않는 가족과의 연과 가축 등 모든 것도 같이 버리고 여기에 모였다. 점차 해가 지고 까만 하늘엔 별이 볕처럼 들었다. 원장은 모닥불에 불을 피웠다. 금속이 없어야만 했으므로 사람들은 지퍼 없는 솜바지나 금속 없이 직접 만든 천 벨트를 이상한 모양새로 차고 있었다. 이상했지만 사람들이 유독 많아 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번에 맞은 해방의 날이라거나, 하는 것들. 하늘이 새까맣게 꺼졌다. 이글거리는 불길이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데웠다. 모두 긴장된 얼굴로 시간을 살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흘렀다.
2011년 12월 31일.
23시 49분, 54분, 59분.
회승이 꿀꺽 침을 삼켰다.
2012년 01월 01일.
12시 00분
…….
12시 31분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외계에서의 구원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아이 중 한 명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재현을 보챘다. 원장은 아직도 긴장된 얼굴로 하늘만을 뚫어져라 올려다봤다. 시골의 새까만 하늘에서 별이 작고 흐리게 흩어져 있었다. 퍽 예뻤다.
02시 48분
어떤 남자의 입에서 비극적인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우린 결국 버려지고 만 거야. 멋모르던 아이들이 따라 울었다. 승협은 품에 안고 있던 회승과 동성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03시 12분
날이 추워서 곧 있으면 감기에 걸릴 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주변을 뒤져 태울만한 것들을 모아왔다. 원장은 곧 얼어붙어 버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04시 29분
입술이 시퍼래진 원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눈을 뒤집어 까더니 아무도 모르는 언어로 말을 뱉어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말에 집중했다. 평소 같으면 겁에 질렸을 재현이 가장 간절한 표정으로 원장을 바라봤다. 신에 들렸다 했을 때처럼 팔다리를 비틀거나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수십 명이 모여서 단 한 명의 신들린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 우스꽝스러웠다. 이윽고 천천히 진정된 원장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숨 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들의 전언이 있으사 친히 세상을 가엾게 여겨 멸망의 찰나를 미루어 주셨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세를 위해 더욱 신실히 신앙생활에 응하라.
침묵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종말은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인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어느 노인이 감격에 찬 흐느낌을 뱉었다. 어느 아이는 옆에 있던 사람의 품에 안기려 머리를 파묻었다.
갑자기 원장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이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나라에, 이 국가에 알려서 우리가 종말을 미루었으며 결국엔 언젠가 구원받으리라는 사실을 알도록 합시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원장은 당장에 집회당으로 달려가 핸드폰을 꺼내 왔다. 그래, 모두가 이 일을 알아야 해. 우리의 신앙심과 노력으로 그들까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해요. 한 남자가 희망에 차 말했다. 가장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벌떡 일어나 잔디밭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날, 해가 뜨기 직전이 되어서야 다시 돌아와서 잠들었다. 회승은 떠나기 전 휴대폰을 변기통에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훈은 도망쳐도 될 걸 그랬나봐, 생각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재현은 잠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으므로 그럴 만 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승협은 원장의 방을 찾았다. 새해가 밝았고 결국엔 해방의 역사 없이 사람들은 현실로 되돌아왔다. 집을 팔고 가축을 정리하거나 심지어는 주변에 재산을 나누어주기까지 한 몇몇 사람들은 흐느끼며 아우성을 쳤다. 게중에는 일을 퇴직하거나 가족과 연을 끊은 사람들도 있었다. 잘 곳이 사라진 자들은 집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잠들 수 있도록 했다. 사회에서의 자신을 정리한 사람도, 사랑을 버린 사람들도 떠나지 못했지만, 승협은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만 18세가 되었으니 보육 시설을 떠나야 한다는 법적인 이유였다.
승협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라. 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문을 열면 원장과 눈이 마주쳤다. 서류가 가득한 책상은 난잡했으며 책장엔 손대지 않아 먼지가 탄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종교와 사람. 신에 대하여. 종말록. 수많은 책들이 가득했다. 승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예.
몸은 멀어졌다 하더라도 믿음을 꾸준히 행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사람들에게 우리로 인해 하여금 구원받았음을 설파하고 믿음을 나눠라. 그들은 너처럼 미진한 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시니...
예.
우린 드디어 이 생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다.
원장의 그렇게 따스한 표정은 처음 보았다. 꼭 종말 하는 것을 기대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승협의 머리 위로 두툼한 손이 올라앉았다. 부디 이 아이의 미래에 모든 악된 것과 속된 것들이 사라지게 해주시고, 좋은 기운만이 가득하도록, 무어라 외는 말 아래서 손의 무게가 유달리도 무겁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힘주어 승협의 목을 꺾을 것처럼. 승협은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열을 지새워 기도했다. 우리가 구원받게 해주시고, 아이들에게 해방과 자비가 미치도록. 저는 불타죽어도 괜찮으니, 아이들만은. 속삭이는 소리와 마음속으로 외는 말소리들이 거의 겹쳐 들렸다. 승협은 처음으로 어딘가에 감싸인 것만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방문을 나오자마자 회승과 마주쳤다. 말을 엿듣기라도 한 건지 섣불리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회승은 우선 승협의 손에 제가 들고 있던 막대사탕을 꾹 쥐여준 후, 그 주먹을 제 손으로 감싸 붙잡고 보육원 뒤켠의 벤치로 향했다. 작은 손으로 어찌나 쥐고 있었던지 사탕 껍질마저 뜨끈했다. 본격적으로 회승이 입을 연 건 승협의 옆에 달라붙다 못해 반쯤 무릎에 올라앉고 난 나서였다.
"형, 나 두고 갈 거예요?"
회승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승협의 얼굴을 바라봤다. 승협도 앳되고 말랑말랑한 볼을 가지고 어제까지만 해도 본인은 다 컸다고 주장하던 회승의 얼굴을 보았다.
"네가 지금 몇 살이었지?"
"열여섯이요."
"그렇구나."
승협은 잠시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떠날 수 있을까?"
승협이 대답하려던 회승의 머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걸 모르겠어 회승아. 그치만 안 갈 수는 없는걸. 졸지에 무시당한 회승이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었다.
형, 정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니까, 해방이요.
고개를 번쩍 든 회승이 당돌하게 물었다. 아직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외부인만의 특권일지도 몰랐다. 승협이며, 훈이며, 재현은 그런 걸 되새기는 방법조차 모르는데. 승협은 몇 번 입을 열려다가 말았다. 그것보단 회승의 입을 틀어막는 게 먼저였다.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돼, 회승아.
회승이 승협의 손을 깨물었다. 결국 세상은 안 망했는걸요. 아무도 안 죽었어요. 승협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분이 이상했다. 형, 나 두고 가지 마요. 나 두고 가지 마. 나도 데려가요. 몇 번이고 말하던 회승이 승협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 다 컸다고 말하더니, 안겨오는 머리통은 어린 아이처럼 따뜻했고 포근한 냄새가 났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부지불식간에 종말이 들이닥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땅이 흔들렸다. 건물이 무너졌다. 지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돌덩이 같은 게 건물 조각 같은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식당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비명소리가 터지는 와중에 하늘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녁이 아니니 노을은 아니었다. 언뜻 부서진 태양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땅이 울리는 소리가 눈앞을 점령한 하늘보다 더 웅장하게 다가왔다. 건물에 깔린 사람들에게서 비명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뒤편 어디선가 환희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던 거야.
원장의 목소리였다. 헤매던 몇몇 사람들이 그 근처로 원장님, 교주님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며 몰려들었다. 원장이 줄곧 말해왔던 종말의 순간이 지금 들이닥쳤다고 믿는 것 같았다. 쿵 쿵 낙하하는 건물더미에 비명소리와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원장의 목소리는 희미하게라도 계속해서 들려왔다. 곧 해방의 열차가 도착할 것이야, 신도들은 어딨나,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라. 훈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손을 붙들린 동성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도 앞으로 달렸다.
원장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올라간 입꼬리가 곧 잡아 뜯겨질 것만 같았다.
해방이 도래한다. 곧 구원이 올 것이니 걱정 말라.
원장의 외침이 모래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소음 속에서 흐렸다. 훈의 손에 잡혀 엉거주춤 따라오던 재현이 우뚝 멈춰섰다. 덩달아 훈도 넘어질 뻔 하면서 멈춰 섰다. 붙잡힌 손이 덜덜 떨고 있었다.
"야 김재현, 뭐해. 빨리 와."
"원장님이 저기 계셔. 훈아. 우리 원장님이,"
"김재현."
훈이 재현의 얼굴을 꽉 붙잡았다. 새빨간 배경 아래선 눈가가 달아오른 재현의 얼굴도 붉게 보였다.
"우리 밖으로 가자. 바깥으로, 더 안전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곳으로 가자. 제발, 재현아."
재현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게 있어? 어떻게? 어디서? 구원받기로 했잖아, 원장님이 말씀하셨잖아. 믿음을,"
"우릴 도우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재현아. 네가 맞을 때 구해준 사람이 누가 있었는데? 신이 있었으면 왜 우릴 구해주지 않았는데?"
왜 우린 그때 구원받지 못했어? 새벽까지 날을 지새웠던 그 날 말야. 훈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작아졌다. 뒤에선 부원장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원장의 것과 다르게 높고 째졌으며 금방 사라졌다. 우리는 직접 나가야 해, 재현아. 흐느끼는 소리는 굳이 부원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것으로 들을 수 있었다. 쿵쿵대는 진동에 심장박동마저 빠르게 뛰었다. 재현은 결국 훈의 팔을 뿌리쳤다. 제 얼굴을 쓸어넘기더니 동성의 손목을 잡았다.
어서 가자, 얼른 도망가자.
재현의 목소리는 금방 울 것만 같았다.
식당 근처에서 회승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승협이었다. 회승은 담벼락 아래 찰싹 붙어 있었다. 승협을 보자마자 화색이 된 얼굴엔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형, 형 얼른 나가요.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회승이 너 먼저 나가자. 데려다 줄게. 아직 못 나온 애들이 있을 거야. 원장님도 모셔 와야 해."
놀란 회승이 급히 승협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나도 갈래요."
"안 돼. 너는 위험해."
"저도 다 컸어요."
"아니야, 회승아."
승협은 한참이나 고민하던 말을 덧붙였다.
"너는 아직 어려."
"형도 어려요."
회승은 한 마디도 질 생각을 않았다. 아직도 대지를 울리는 진동은 그치지 않았고 무너짐은 가속되고 있었다. 입술을 씹으며 고민하던 승협이 멀리 있던 훈을 발견했다. 회승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서자 회승은 화색이 된 얼굴로 따라갔다. 마침 재현의 무릎을 걷어차고 있던 훈이 승협을 돌아봄과 동시에, 승협이 회승을 훈의 품에 꽉 안겨줬다. 어어, 밀리느라 뒤로 넘어질 뻔한 회승이 훈의 팔에 붙들렸다. 입술을 꾹 앙다문 동성과 무릎이 차인 재현도 재빨리 회승의 팔을 잡았다.
"훈아, 동성이랑 회승이 데리고 가. 먼저 나가 있어. 갈 수 있지?"
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승이 뭐라 소리치기도 전에 승협은 급히 몸을 돌려 아직도 위태로운 건물 쪽으로 향했다. 훈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는데 회승이 손을 뿌리치고 승협의 뒤를 따라 달렸다. 따라 달려가려는 훈의 손목을 동성이 재빨리 잡아챘다.
"잡지 마요 형. 회승이 형도 분명 결심해서 가는 걸 거야. 승협이 형 혼자 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저기서 다투는 걸 봤어요. 동성이 애써 눈에 힘을 주고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손목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말라 보였는데도 그랬다. 훈은 잠깐 고민하다가 몸을 돌렸다. 승협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지만 우선 더 작고 어린 재현과 동성이 먼저였다. 자갈로 이루어진 마당 끝에선 무너지는 콘크리트 벽돌 아래서 그토록 옭아매던 정문의 철조망이 힘없이 으깨지고 있었다. 고양감이 심장박동과 함께 부풀었다. 금속 물질은 그들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아직도 그치지 않고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발걸음을 더욱 서둘러 떨어지게 했다. 시야 끝에선 건물의 창문을 넘어 도망친 다른 방의 아이들이 풀숲으로 담으로 넘어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정문에 운석처럼 박혀 있던 파편 덩어리가 바닥으로 낙하했다. 동시에 문이 부서졌다.
낡은 운동화를 신은 발이 으깨진 문틀과 부스러진 담벼락 위를 넘어섰다. 문만 나서면 논과 밭이었다. 길게 펼쳐진 길의 끝과 끝으로 희미하게 마을이 보였다. 납작하거나 조금 높은 게 전부인 건물들이 평생 본 적 없는 모습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이 근처에는 길까지 덮칠만한 건 없으므로 전봇대가 머리 위로 쓰러지거나 땅이 발 아래서 갈라지지만 않는다면 마을 어귀까지 나가는 길은 아무 문제 없을 것이었다.
손을 꽉 붙잡은 재현은 거의 울고 있었다. 동성은 진동에 구르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하다가 겨우 재현의 팔목을 붙잡고 멈춰섰다.
기분이 이상했다. 자꾸만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종말이 찾아왔으니 그들은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손닿을 죽음을 벗어나지 않는 한 어디든.
단락 텍스트입니다. 텍스트를 추가 및 편집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