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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승협은 그때 졸고 있었다. 신인 프로듀서는 밤샘에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사흘 연속까진 좀 버겁다 생각하던 찰나였다. 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비명소리와 악 쓰는 소리들이 들렸다. 아래층에 있는 아이돌의 사생 팬들이라도 왔나보지. 승협은 개의치 않고 계속 졸았다. 59시간동안 깨어있던 뇌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승협은 그로부터 3분 24초가량이 더 지나서야 본능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낀 심장의 미칠 듯한 땜핑질로 깨어날 수 있었다. 창에 머리를 드민, 입술이 잘리고 이마가 찢겨나간 얼굴과 눈을 마주치기까지 2.7초.

 

 

 

2.

 

차훈은 야간 편의점에서 만화책을 정리하는 동안 누군가 유리문에 몸을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이 정신 나간 한국인들을 당기세요 라는 문장을 읽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쿵, 쿵.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육중한 몸뚱이 소리가 편의점 안을 울렸다. 훈이 신경질적으로 혀를 씹으며 창고 문을 열고 나왔다. 맛이 간 취객이 오기라도 한 모양이지.

저녁이라 창밖은 새까맸고, 훈이 있는 편의점은 밝았으며, 그래서 얼굴 절반이 찢어진 남자의 달랑거리는 눈알과 살덩이가 비어져 나오는 허벅지는 훈의 자리에선 과하게 선명하게 보였다. 그건 결코 누군가 의도한 구도는 아닐 터였다.

 

 

 

3.

 

재현은 달리고 있었다. 와 미친 거 아냐, 이게 무슨 난리야? 영화 촬영 중이야? 그러기엔 물어뜯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끔찍했고 줄줄 늘어지는 핏덩이는 비린내가 났다. 재현은 그 와중에도 닫지 않고 나온 대학교 과실 문이 걱정이 되었다. 아 얼마 전에 실음과 장비 누가 훔쳐가서 에타 난리 났는데, 반납 잘 하고 문단속 철저히 하라고 학회에서 공문 내려왔는데… 그렇지만 가엾은 드럼의 안위를 걱정해주기엔 재현의 목숨이 더 급했다.

재현은 한때 육상부인 체 하는 포환던지기 선수로써의 경력을 발휘해 뒤지게 달렸다. 머리가 깨져선 바닥을 기는 여자에게 발목을 잡힐 뻔 했을 땐 눈물이 터졌다. 재현은 꼴사납게 엉엉 울면서도 약지가 없는 손으로부터 도망쳤다.

 

 

 

4.

 

회승은 옥탑방에 갇혀 있었다. 늘 현금으로 월세를 받길 좋아하던 아랫집 늙은 아저씨. 초겨울에도 난닝구만 입고 마당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서 회승의 빨래에 담배 쩐내가 들게 하는 범인이자 한 번 올라오면 내려갈 생각을 않던 아저씨가 지금 팔 하나가 잘린 채로 초록색 옥탑 바닥을 배회하고 있었다. 처음에 눈이 마주친 회승은 이게 무슨 개꿀잼 몰래카메라야, 했는데, 티브이 뉴스에서 지껄이는 소리들은 안 그랬다. 이해도 가지 않는 말을 시끄럽게 틀어댔는데 그것보다는 창문을 내다보는 게 이해가 빨랐다. 빠악, 어떤 남자가 빠따를 들고 피칠갑인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는 게 보였다. 아, 눈이 마주쳤다.

 

 

 

5.

 

동성은 야구 배트를 꽉 움켜쥔 채 회승의 집 문을 두드렸다. 형, 형 괜찮아요? 문 좀 열어주세요. 안에서 덜거덕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뒤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남자가 힘이 들어가지 않는 사지로 기어오고 있었다. 동성은 저도 모르게 배트로 남자의 머리를 몇 번이고 내리쳤다. 당겨진 팔뚝 근육이 팽팽해졌고 온몸에 쉼없이 피가 튀었다. 이미 으깨진 머리통에도 몸통이 경련하는 모습은 꼭 아직도 남자가 살아서 기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덜걱거리던 문이 겨우 열리고 회승이 다급하게 몸을 내밀 무렵, 동성은 울고 있었다.

 

 

 

6.

 

애앵, 빨간 등이 울었다. 요란한 소리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겹쳐 들려서 세 배로 더 끔찍해졌다. 애앵, 애앵, 아아악, 살려줘. 꺄아아악. 살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생생하게 물어 뜯겨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 종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시체들의 움직임. 훈은 귀를 틀어막으며 달렸다. 이게 뭐야, 무서워. 이게 무슨 일이야. 아직 벗지 않은 편의점 알바복이 가로등 빛 아래서 별 의미 없이 반짝거렸다. 사방에서 황급히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둑한 밤에서 사람과 시체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뛰어오는 발소리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7.

 

승협이 형?

 

 

 

8.

 

훈이 동그란 눈으로 맞은편의 승협을 쳐다보았다. 피가 튀고 잔뜩 경직된 얼굴이 평소 보던 느긋한 승협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너 훈이야? 눈이 마주친 승협이 안도감에 재빨리 뛰어와 훈을 끌어안았다. 탄탄하고 넓은 몸이 어찌나 달렸던지 뜨거웠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코 먹는 소리에 훈은 재빨리 승협의 어깨를 붙잡고 떼어냈다. 지금 울 시간 없어. 빨리 가자. 근처에 맨션 4층에 위치한 훈이 룸메이트인 동성과 사는 자취방이 있었다. 주변에 사람만 없다면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 텐데. 적어도 계단에서 만나지만 않는다면.

 훈이 잘근잘근 혀를 깨무는 동안 붉어진 눈을 비비며 따라가는 승협은 몇 번이고 엎어질 뻔하다가 말았다. 훈이를 만나서 다행이야.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9.

 

우리 아빠가 이상해요. 살려주세요. 누군가 울었다. 꺄아악, 이 미친 새끼가. 그 뒤로는 뭔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두개골일 것이었다. 그 다음은 찢어지는 비명소리. 소리가 중간에 일그러지는 걸 보니 살점이 제일 드러난 볼을 뜯어 먹힌 모양이었다. 재현의 시야에서는 헉헉대는 숨소리에 그 소리들이 점멸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이럴 거면 괴물들 나오는 공포영화라도 많이 봐둘 걸 그랬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를 주워든 재현이 결심이라도 한 표정처럼 꽉 붙드는 와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10.

 

야! 전화를 걸면 어떡해!!! 놀랐잖아!! 

 

 

재현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형 목소리가 더 커요. 회승은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귀에서 다른 쪽으로 핸드폰을 옮기며 귀를 후볐다. 옆에서 배트를 꼭 끌어안은 동성은 슬슬 울음을 그쳐가던 차였다. 아니, 괜찮냐구요. 형 아까 학교 간다길래 걱정 되서 그랬지.

 

 

허어엉, 너는 이 판국에 전화할 정신도 되나부다…. 집이야?

 

그러니까 전화하죠. 지금 집에 동성이 와 있어요. 형 보러 왔다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만나기로 한 곳에 형이 없었대. 뭔 일 있는 것 같으니까 빨리 와봐요.

 

모르겠어, 내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재현이 킁, 하며 코 먹는 소리가 들렸다. 회승은 도망치는 사람들과 괴물을 때려잡는 사람이 함께 보이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마지막으로 바로 창문 앞에서 머리가 깨진 집주인을 봤다.

 

형 어느 쪽에서 오고 있어요? 저희가 갈게요.

 

 

 

11.

 

훈은 이 시끄럽고 도움 안 되는 이승협을 들고 휘두르고 싶었다. 적어도 골 울리는 쇠파이프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한 대를 때릴 때마다 진동이 그대로 두개골까지 전해져 와서 온 몸이 얼얼했다. 게다가 가만 놔둔 이승협은 자꾸 헛소리도 했다.

 

우리 경찰서로 가자. 거기가 안전할 것 같아. (거기 번화가야, 형. 거기 갔다가 우리 팔다리가 뷔페 된다.)

 

헉 나 작업실에 중요한 걸 놓고 온 것 같아. 같이 가주면 안 돼? (이따가 가자. 이따가.)

 

허어엉, 훈아아아… (아 시끄러워!!)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영화 안 본다고 합주실에서 도망갈 때 잡아와서 같이 볼 걸 그랬다. 이런 꼴에도 좀 익숙해지라고. 훈은 문득 함께 영화를 보던 동성이나, 회승이 같은 듬직하고 귀여운데다가 근육도 짱짱한 동생들이 그리워졌다. 걔들은 지금 괜찮으려나.

 

 

12.

 

 훈이 골목길을 돌자 익숙한 빌라 정문이 나타났다. 대학 원룸촌이지만 지금은 방학을 해서인지 거리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한산했다. 훈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없었고 계단은 좁았다. 끽해야 두 명 정도가 나란히 설 넓이였다.

 

 

1층. 우편함 앞에 자전거가 서 있다. 훈의 집 우편함엔 우편 하나가 들어 있었다. 정확히는 훈이 신경도 안 쓰고 지나치려던 걸 승협이 발견해 준 거였다.

 

승협은 누군가의 편지(을)를 손에 넣었다!

 

훈이 말했다. 내 거야 내놔.

 

2층. 201호 앞에 짜장면 그릇이 놓여 있다. 맛있겠다. 훈은 지나가며 생각했다. 종전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저녁도 못 먹었다. 배가 고팠다.

 

3층. 다행히도 아직까진 인기척이 없다. 다들 방학을 맞아 본가로 빠져나간 탓이겠지.

 

4층에 도달하기 직전 그으윽,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평범한 사람의 것과는 달랐다. 계단 옆으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승협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었다.

 

 

 

13.

 

회승이 집에서 들고 나온 건 당구 큐대였다. 그게 왜 집에 있어요 형..? 동성이 의문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는데 회승은 쌈박하게 집주인 거라고 덧붙였다. 많이 휘둘러본 마냥 자세를 잡는 게 동성으로써 하여금 자꾸만 불신을 품게 했다.

 

정말 갈 거예요?

 

가야지. 너는 집에 있을래?

 

회승이 눈물을 그친 동성을 내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저런 상황에 처해 있던 애한테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 마저 압박이었지만, 그럼에도 혼자 가는 게 무서운 건 사실이었다. 기세좋게 구하러 간다고 말하긴 했어도 혼자로썬 살아남을 자신도 없고. 회승이 입을 마저 열기도 전에 동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같이 갈래요.

 

 

 

14.

 

재현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뒤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본 재현이 깜짝 놀란 얼굴을 하다가 재빨리 뛰어오는데, 주저앉아 울고 있던 어느 남자가 갑자기 피를 토했다. 재현이 놀라 멈춰선 것도 동시였다. 꺼헉, 꺼흐흑, 우욱, 불쾌한 소리를 내며 목을 틀어쥔 남자의 눈에 핏발이 섰다. 꽉 악문 입에서 깨물린 혀가 턱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씹혔다. 너덜너덜한 혀가 달랑거리든 말든 몸을 비틀던 남자가 근처에 있던 시체에게 달려들었다. 흔들리는 시체의 표정이 남자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이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한 것도 거의 그와 비슷한 시간이었다.

 

 

 

15.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회승이었고.

 

 

16.

 

 

 좀비는 훈이 미처 물러서기도 전에 습격해왔다. 무방비한 훈을 밀치고 재빨리 앞으로 나선 승협이 피에 젖은 머리통을 후려쳤다. 몸의 중심을 잃은 훈이 뒤로 굴러 떨어지거나 말거나, 좀비는 얻어맞은 기색도 없이 몸을 비틀더니 승협에게 달려들었다. 딱, 딱, 자꾸만 악물리는 이빨 소리가 금방이라도 귓볼을 깨물 것 같았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훈이 삔 손목을 붙들고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지금 승협의 목덜미에 손톱을 박아넣은 괴물은 옆집에 살던 이웃이 분명했다. 가끔 떡이나 음료 따위를 나눠주던 친절한 사람. 승협이 훈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훈이 손에 잡힌 파이프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17.

 

4층의 옆집 문 앞에는 이미 뜯어 먹히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가슴이 너덜거리고 내장이 흘러 나왔지만 대체로 몸은 멀쩡해 보였다. 저 사람도 저렇게 변하면 어떡하지? 고민하던 훈의 옆에서 승협이 머리를 깨트릴지, 창밖으로 던질지 대안을 제시했다. 훈의 표정이 기분 나쁘게 썩어 들어갔다. 승협이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20.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물린 사람들이 좀비가 되지 않는 거.

 옷을 갈아입고 나온 훈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승협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밖을 내다봤다. 내장이 비집어져 나오고 팔다리가 잘린 시체 몇 구가 어기적거리며 기어가거나 걷고 있었다.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지옥도였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이 두려웠는데, 뒷목이나 온 몸에 군데군데 느껴지는 싸늘한 통증은 자꾸만 현실감을 돌아오게 했다. 커튼을 치고 리모콘을 집어든 승협이 훈을 돌아봤다.

 

원래 물려야 좀비가 되는 거야? 직접 봤어?

 

아아니, 보통 영화나 책에서 나오는 좀비들이 그런다고. 근데 아무리 봐도 안 그래. 아까 그 사람도 그랬잖아. 물린 흔적은 없던데.

영화는 그냥 픽션이어서 그랬나보지. 승협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면 훈이 네가 살짝만 물려보고 올래? 실험해보자.

죽고 싶어?

농담이야. 그런데 저게 애초에 좀비는 맞아?

 

 

 

 

23.

 

 

대피소로 가요. 지금 사람들을 받고 있대요. 아까 뉴스에서 봤어요. 동성이 재빨리 말했다. 재현은 정신도 못 차린 상태로 우선 고개부터 끄덕이고 봤다. 재현의 뒤쪽에서 길게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좀비가 어기적거리며 기어 오고 있어서 회승은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런데 대피소가 어느 쪽이야? 다급하게 묻는 재현을 바라보던 동성이 철렁 심장이 떨어지는 듯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들고 있던 배트도 내던진 손이 급히 재현의 팔뚝을 붙잡았다. 내뱉는 목소리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형 혹시… 물렸어요?

 

 

 

 

25.

 

대피소가 있대. 그곳에 가면 안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괜찮을까? 영화 같은 곳 보면 군인이 제일 나쁜 사람이고 정부는 아무 것도 안 하던데.

여긴 현실이야. 설마 그러겠어?

승협은 본인이 말하면서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28.

회승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길 선택했다. 동성은 고개를 끄덕였으며 재현은 그럴 정신도 없었다. 아까부터 몰아붙여진 정신은 이미 폐허였다. 그가 물렸거나, 물리지 않았거나, 그런 건 이제 상관이 없었다. 동성이 앞으로 뛰어나가 초록 대문을 열 동안 회승은 재현을 질질 끌다시피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집주인 남자가 흘린 피가 계단에서 흘러내려 시멘트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계단을 걸어올라 갈 때마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났다. 회승은 문을 꽉 걸어잠그고 옥상으로 따라갔다.

재현은 집에 오고서야 이성을 차린 모양이었다. 초점이 돌아온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떡하지, 내가 물렸으면 어떡하지. 동성은 입을 꾹 다물고 재현의 목을 들여다봤다. 불길한 표정으로 자꾸만 창밖을 힐긋거리고 자신이 죽인 남자를 쳐다봤다.

물린 건 아닌데, 긁힌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 괴물들의 체액이 들어갔을 수도 있고…….

재현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회승이 눈을 굴리더니 재현의 등 뒤로 가까이 다가왔다. 재현은 이제 누구의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감염 경로가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물리지 않아도 저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회승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짧은 침묵이 오갔다.

29.

 

훈과 승협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빌라의 유리문이 열려, 들어오려던 생존자로 인해 1층 현관이 기어오르는 시체로 인산인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둘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32.

내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33.

제 안에서 이미 단정짓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로 재현이 울먹거렸다. 아까 그렇게 울어놓고 또 울었다. 회승은 재현이 잡아먹히거나 괴물로 변해 죽는 것보다 탈수로 먼저 죽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38.

 

 

 훈은 좀비의 피를 먹을 뻔 했다. 아까 머리를 내려치는데 입에 피가 튀겨 들어왔다고 했다. 그거, 누군가 말하기도 전에 회승이 훈의 입에 물병을 쑤셔 넣었다. 그게 혀 안쪽을 잘못 찔렀는지, 아니면 피가 그저 역겨웠던지 훈은 테이블 모서리를 잡고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동성은 그걸 보며 라디오 앞에 무릎을 감싸앉고 앉아 있었다. 온통 침침한 건물 안에선 제 팔다리의 윤곽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43.

 

대피소는 갈만한 곳이 못 됐다. 승협은 그걸 뒤늦게 깨달은 게 가장 큰 실수라는 걸 알았다. 어디서도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이미 붕괴한 질서를 되찾을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48.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으므로 이야기는 거의 쓰이지 못했다.

 

 

 

49.

 

농담이야. 회승이 생각한다.

 

 

 

63.

 

그렇지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74.

 

그러니 그가 죽은 것은 아주 사소한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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